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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유엔기념공원 자원봉사 소감문쓰기 대회] 금상-박지윤/UN기념공원이 맺어준 인연: 내 마음을 바꾼 편지

  • 작성자admin
  • 작성일2018-12-24 15:04:32
  • 조회1230

아래는 '2018 유엔기념공원 자원봉사 소감문쓰기 대회'에서 금상을 입상한 작품입니다.


UN기념공원이 맺어준 인연: 내 마음을 바꾼 편지 - 박지윤 (부경대 UN서포터즈)


저는 국립 부경대학교 국제지역학부에 재학 중인 1학년 박지윤입니다. 비록 본 공원과 가까운 학교의 학생이기는 하지만, 부산 사람이 아닌 까닭에 갓 입학을 한 새내기인 저로서는 공원에 가보기는커녕 그 곳이 무엇을 하는 곳인지조차 몰랐습니다. 생소했던 것이지요. 그러던 와중, 교내에서 'UN 서포터즈 평화 봉사단을 모집한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봉사시간이 필요하다는 안일하고 단순한 이유로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외국에서 살다 와서 영어는 자신이 있었거든요. 그래서 지금 돌아보면, 솔직히 ’UN 공원에 잠들어있는 거룩한 혼령을 달래주려라거나,’한국전쟁 참전용사 분들을 열렬히 사모해서라기 보다는 저러한 이유로 봉사단에 가입하게 된 것이지요.

이 글을 읽는 분들께 솔직하게 말씀 드리겠습니다. 저러한 마음가짐으로 봉사단에 가입하고 나니, 처음에 굉장히 힘들었습니다. 녹록치 않았던 것입니다. 우리 봉사단은 전적으로 UN공원에서 활동을 했습니다. 공원 내에서, 단순히 쓰레기 줍기와 같은 환경정화 봉사활동부터 묘역안내까지, 굉장히 다양한 봉사들을 했습니다. 제가 힘들었던 이유는 단순했습니다. ‘1학년의 철없는 마음이였던 것입니다. 말 그대로, 저는 갓 대학에 들어온 스무 살으로 봉사도 좋지만 친구들과 함께 놀고 싶었고, 그 무엇보다도 애초에 이 봉사활동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자각도, 목표의식도 없이 봉사단에서 활동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이러한 저의 철없는 마음가짐을 180도 바꾸어 놓게 된 사건이 하나 있었습니다. 바로 영국 출신 제임스 그룬디참전용사님과의 만남입니다. 아직도 기억이 생생합니다. 그 날은 54일이였는데, UN기념공원 측에서 주선을 해주셔서 추모관에서 간담회 행사를 가진 것입니다. 이 행사를 위한 저의 역할은 편지를 작성하는 것이었는데, 처음에는 막막했습니다. 저는 제임스 그룬디 참전용사님에 대해 아는 것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인터넷에서 자료를 찾아보고, 수소문을 해보니 제임스 그룬디 님께서는 상당히 대단하고, 또 용감하신 분이였습니다.

그룬디 씨는 한국 전쟁 때 시신처리전담팀(Recovery Unit)에서 활동하신 용사였는데, 그의 일은 전장에 전사한 동료들의 주검을 되찾아오는 것이었습니다. 내 전우들이 숨지는 순간을, 어쩌면 그 후에 더 비참한 상황을 직접 보고, 또 그들의 유해를 부산까지 옮겨 안치한다는 것은, 매우 고통스럽고 힘든 일이였을 것입니다. 그가 그렇게 수습한 유해들이 유엔기념공원에 안장되어 있습니다. 그는 매해마다 전우들을 만나러 저 멀리 영국에서 공원을 찾아오는데, 안타깝게도 척추암 말기 판정을 받아 내일을 기약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했습니다.

이러한 상황을 알고 나니 마음은 물론 코끝까지 찡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러한 마음으로, 또 손끝으로 한자 한자 편지를 써 내려 나갔습니다. 친애하는 그룬디 씨께. 평화를 지키기 위해 헌신한 참전용사들에게 정말 감사하고 죄송합니다. 존경합니다. 그룬디 씨께서는 동료들을 기리기 위해 여기까지 매년 오시는데, 그 정신을 본받을 것입니다. 저도 평화를 지키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편지를 쓰고, 고치고, 또 감정을 꾹꾹 눌러 담았습니다. 바로 그 때였습니다. 제 마음이 바뀌게 된 것은. 편지를 쓰고, 한 참전용사를 알게 되고, 그가 겪은 일들을 알고 나니, 더 이상 전쟁은 나와 멀리 있는 것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전쟁은 가까이에 있는 것이었습니다. 전쟁은 내 먼 조상들만의 이야기가 아니었습니다. 아직도, 불편한 거동을 이끌고 전쟁에서 전사한 동료들을 위해 저 먼 한국으로 매년 날아오는 이가 있었습니다. 전쟁이란 그런 것이었습니다. 전쟁에 대해 더 알고 나니, 평화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습니다. 평화는 언제든지 깨질 수 있는 유리구슬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런 유리구슬을 잘 닦아 고이 모시는 일을 하는 것이 우리 봉사단 이였고, 또 유엔평화공원이었습니다.

그렇게 생각을 하고 나니 신기하게도 봉사단 활동이 완전히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자부심을 마저 생기게 되었습니다. 대망의 간담회 날, 편지를 완성하고 제임스 그룬디 씨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제임스 그룬디 씨는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씩씩하고 용감한 분이였습니다. 비록 거동이 불편하고 귀가 잘 들리지 않아도 우리 봉사단원들 한명 한명의 눈을 맞추며 자신이 처했던 상황을 태연하게, 그러나 숙연한 분위기에서 말씀 해주셨습니다.

강연이 끝나고, 기다리던 저의 편지 낭독 시간이 왔습니다. 저는 떨리는 손으로 단상에 나가, 천천히 그룬디 씨의 눈을 맞추며 편지를 낭독하기 시작했습니다. 실로 마법 같은 순간이었습니다. 낭독하는 제 목소리 하나 하나, 말 한마디 한마디, 문장 한줄 한줄에 자부심, 존경 그리고 사랑이 묻어 나왔습니다. 이 봉사활동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자각, 목표의식이 생긴 것이지요. 제 편지에는 이런 구절이 있었습니다. “You gave your today for our tomorrow." 한국어로 번역하면 당신은 우리의 내일을 위해 당신의 오늘을 주었습니다.“ 그룬디 씨와 같은 참전용사들의 희생이 없었다면, 지금의 한국은, 지금의 평화는, 지금의 저는, 지금의 유엔평화공원은 존재하지 않았을 지도 모릅니다. 그는 그의 오늘을 주었습니다. 이러한 저의 마음을 알았는지, 편지 낭독이 끝나고 그룬디 씨는 고맙다며 몇 번이나 말하셨습니다.

그래요. 그렇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 봉사활동이, 유엔평화공원에서 한 그 어떤 봉사활동보다도 기억에 남습니다. 아직도 봉사단에 있냐구요? , 맞습니다. 저는 아직도 부경대학교 UN평화봉사단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어엿한 막내로 말입니다. 처음에 봉사단에 가입한게 1학년 초반 새내기 시절로 엊그제 같은데, 이제 벌써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지나 겨울이 와 2학년을 코 앞에 두고 있습니다.

타지에서 처음 해본 대학 생활, 확실치 않고 서툰 것도 많았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경험을 뽑으라면 주저함 없이, 봉사단에 가입하고 유엔평화공원에서 봉사활동을 한 것을 꼽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지금 제임스 그룬디씨는 무엇을 하고 계시냐고요? 놀라지 마세요. 부경대학교 UN 서포터즈 평화봉사단과 제임스 그룬디씨의 인연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우리 봉사단은 이번 겨울에 영국으로 가 참전용사분들을 만나 행사를 진행할 것입니다. 거기서 또 우리의 제임스 그룬디 씨를 볼 수 있겠지요. 이리 소중한 인연을 만들어준 유엔평화공원에 감사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