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하여 1950년 6월 25일 새벽 북한공산군은 38선 전역에 걸쳐 전면 남침을 개시하였다. 전쟁 발발 소식을 접한 미국은 25일 유엔안전보장이사회를 긴급 소집하여 북한의 무력공격은 평화를 파괴하는 '침략행위'라 선언하고, 북한은 즉시 전투행위를 중지하고 그 군대를 38선으로 철퇴시킬 것을 요청하는 결의를 채택하였다.

또한 유엔회원국들로 하여금 유엔에 원조를 제공할 것과 북한에 대하여는 어떤 원조도 중단하도록 하였고, 6월 27일에 이르러 미국대통령 트루먼(Truman, H.S.)은 미국의 해군, 공군으로 하여금 한국군을 지원하도록 명령하였다. 그날 안전보장이사회는 유엔회원국들에 대하여 북한의 무력공격을 격퇴하고 국제평화와 한반도에서의 안전을 회복하기 위하여 필요한 원조를 한국에 제공할 것을 내용으로 하는 권고를 채택함으로써 미국의 의사조치를 추후 승인하기에 이르렀다.


곧이어 6월 28일에는 동경(東京)에 있던 극동군사령관인 맥아더(MacArthur,D.S.)원수가 내한하여 전선을 시찰하고 미국방성에 지상군의 파견을 요청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미국의 군사조치는 다시 7월 7일에 안전보장이사회에서 한반도에서의 유엔의 군사활동을 위하여 미국에게 최고지휘권을 위임하는 결의를 채택함으로써 미국의 맥아더가 유엔군총사령관에 임명되고 유엔군의 파견이 결정되었다.

이로써, 한반도에서의 군사지휘권은 미국의 맥아더원수에게 주어졌으며, 한국을 원조하기 위하여 육군, 해군, 공군 및 지상군을 파견한 16개국의 군대는 유엔군사령관의 지휘를 받게 되었다. 이때 한국의 이승만(李承晩)대통령도 한국군에 대한 작전지휘권을 유엔군사령관인 맥아더에게 이양한다는 각서를 썼고, 이것이 이른바 대전각서로써 7월 14일에 수교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