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전의 주도권을 장악한 유엔군과 한국군은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과 동시에 총반격 작전을 수행하여 서울을 수복하고 파죽지세로 진격하여 9월 말 38도선에 도달함으로써 97일만에 전쟁 이전의 상황을 회복하였다. 유엔군 사령부는 아군이 38도선에 도달하자 유엔의 6ㆍ28결의와 군사작전의 '추격권 원칙'에 입각하여 북한군 격멸을 위한 북진작전을 단행하였다.

한국군은 10월 1일 역사적인 북진작전을 전개하였고 유엔군은 10월 9일 38도선을 돌파하고 북진길에 올라 10월 19일에 평양을 탈환하고 23일에는 청천강으로 진출하였다. 유엔군은 추수감사절까지는 전쟁을 종결짓는다는 판단하에 10월 24일 중공과의 국경지대를 목표로 진격작전을 시작하였다.


이때 유엔군 사령부는 중공군의 참전을 우려하고 있었지만 그 징후를 포착하지 못하고 그들의 참전시기가 지난 것으로 판단하였다. 그러나 25일 운산, 온정리 일대에서 아군이 대규모 중공군의 기습을 당해 일대 혼란에 빠졌다. 비록 이때 한국군 제6사단 제7연대가 압록강변의 초산에 도달하는 쾌거를 이룩하였지만, 이 부대도 곧 퇴로를 차단 당하고 말았다. 이와 같이 중공군의 참전은 한국전쟁을 새로운 전쟁으로 변모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