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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밤하늘에 박힌 별만큼이나- 어잔 을마즈

  • 작성자오민경
  • 작성일2006-12-20 11:57:59
  • 조회4584

베일을 쓴 여인은 아직도 차디 찬 땅에 엎드려있다 어제에 이어 오늘도 소리 없이 흐느끼는 그녀는 좀체 일어날 줄을 모른다. 6개월밖에 안된 아기였던 자신을 남겨 두고 떠난 아버지를, 머나 먼 나라 한국 전쟁에 참가하셨던 아버지를, 그곳에서 22세의 이슬로 사라져버린 아버지를, 늘 그리워했던 아버지를 54년 만에 찾은 것이다. 여행이, 모든 여행이 분홍빛만은 아닌 것이다. 순례자의 걸음처럼 고통이 따르는 여행도 있겠고 ‘어잔 을마즈’처럼 이국땅에서 54년 만에 아버지의 유골을 만나는 여행도 있는 것이다. 산자와 죽은 자의 만남에는 밤하늘에 박힌 별만큼이나 가슴 맺힌 사연이 있는 것이다. 이제 핏덩어리 그 아가가 커서 결혼하고 인생을 어느 정도 알게 되었으며 그녀가 낳은 아들이 돌아가실 때의 아버지 나이만큼이나 되었을 때 어잔은 희끗해진 머리카락의 남편과 함께 아버지를 찾아 뵙는 머나 먼 길을 떠나왔던 것이다. 계속 어루만지고 쓰다듬는다고 차가운 돌이 무슨 말을 해 주리. 아버지 묘를 지키는 겨울 장미들이 활짝 웃지 못하는 것은 차가운 날씨 때문만은 아니리라. 멀리 유럽과 아시아가 만나는 곳 터키라는 나라에서 온 여인은 비석 아래를 기어코 열어보고 싶어 했다. 단 한 번만이라도 아버지를, 그의 유골이라도 보고 싶어 했다. 어잔 을마즈는 바로 몇 달 전에야 아버지의 무덤이 한국의 부산이라는 곳에 있다는 사실을 한국을 다녀간 터키 사람으로부터 듣고 알게 된다. 대부분의 유가족들이 그랬겠지만 그들의 삶은 고달파서 어잔은 그 동안 아버지 묘소를 찾을 엄두를 못 냈었다. 세월이 흘러 초등학교 교사였던 그녀가 은퇴를 했고 엔지니어였던 남편과 함께 이제사 아버지가 묻혀있다는 머나먼 나라를 찾게 된 것이다. 얼굴도 모르는 장인이지만 사위도 눈물을 닦았다. 두 손을 나란히 펴서 손바닥을 하늘로 하고 생전의 장인이 그랬듯이 코란을 암송했다. 어잔이 생애 처음 있을 이 여행을 준비하기 위해 한 일이 무얼까. 그녀는 아버지가 태어났던 집을 용케 찾아가 보았으며 그 집에서 아버지가 밟았을 만한 흙을 한 줌 가져와 그 흙을 아버지 묘지 앞에 뿌렸다. 그리고 묘지 옆의 한국 흙을 봉지에 담았다. 그 외에 또 무얼 할 수 있었을까 아버지가 만지작거리던 유물인 염주를 내게 만져보라고 건넨다. 그가 죽기직전 이 염주를 돌렸던 것처럼 한 알 또 한 알 돌려 보았다. 그리고는 작은 사진첩을 펼쳤다. 빛 바랜 사진 속에 잘 생기고 선해 보이는 터키인 젊은이가 있다. 그가 40여일이나 걸려 배를 타고 한국으로 떠난 이후 그의 얼굴은 22세 젊은이로 정지해 버렸지만 터키에 남아있던 꽃다운 그의 아내는 이제 일흔이 넘은 할머니가 되어 버렸다. 그리고 어잔의 아버지를 빼다 박은 학사모를 쓴 장성한 아들의 사진에서 나는 세월을 보았다. 전쟁터에서 병사는 시를 써서 사랑하는 아내에게 보냈다. 시의 한 구절을 읽어 줄 수 없느냐는 내 요청에 딸은 너무 슬퍼서 그 시를 끝까지 읽을 수도 없었다고 했다. 전쟁 터 한국 땅에서 시를 쓰고 하루 다섯 차례 기도를 드리는 22세의 터키 병사를 상상해 보기가 쉽지 않다. 밤하늘에 박힌 별만큼이나 순수한 젊은이들을 이 땅에서 사라지게 했다는 죄책감이 밀려들 뿐. 어잔의 아버지 Sait Tasdemir는 한국전쟁 중 이슬람 의식인 기도를 하던 중에 총에 맞아 전사했다고 한다. 어떻게 기도 중에 총을 맞을 수 있느냐는 멍청한 내 질문에 이슬람교도로서 기도 중에 죽는 것은 최고의 영광이라고 했다. 나는 너무도 착한 이슬람교도들을 만났다. 그런 이슬람교를 이용하는 극단 이슬람교도들만 기억했던 편견을 씻게 되었다. 병사가 고향에 두고 온 보고 싶은 아내에게 보낸 편지에서 자신이 만일 죽게 되면 시동생과 재혼하라고 했단다. 병사의 아내는 유언대로 그렇게 시동생과 재혼을 했다. 그래서 그 집안 형제가 그 여인에게서 8남매라는 자손을 얻었으니 죽은 병사도 자기 일처럼 좋아하리라. 어잔이 들려준 터키 언어가 슬프기만 한 것은 아니다. 아버지는 어느 날 편지에서 ‘사랑하는 당신, 이곳이 아무리 전쟁터지만 염려하지 말아요, 디저트로 쵸코릿이 나올 때도 있다우‘ 통역을 통했지만 나지막한 터키 말은 이상하게 한국말처럼 들렸다. 어순도 한국말과 같고 같은 우랄알타이어계통이라서 그런가. 누가 누구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해야 하는 건지 오히려 어잔 부부가 한국인인 우리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여러 번 하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돌아가신 아버지가 좋은 사람들이 돌봐주는 편안한 곳에서 누워계신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이제부터는 자기도 좀 더 편안해질 것 같다고 했다. 밤하늘에 박힌 별들의 이야기는 이어질 것이다. 병사에게는 딸이 있었네 병사는 아내를 고향에 두고 왔다네 모든 병사들에게 그렇듯이 그에게도 어머니가 있었다네 그러나 그 병사는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네 (06. 12.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