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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유일의 재한유엔기념공원

  • 작성자이석조
  • 작성일2008-01-15 10:36:28
  • 조회2783

베토벤의 무덤을 쉽게 찾아가 아무라도 꽃 한 송이를
바칠 수 있는 문화는
우리의 깊은 산속 묘지 문화와 차이가 있다
이태리나 프랑스 등 유럽 여러 나라에 가면 관광코스로
공동묘지를 찾는다
미국에서는 모든 묘지는 공동묘지여야 한다는 헌법조항이 있다
땅값과 집값에 목을 매는 나라 사람들에게 공동묘지는
어떻게 다가올까
그것도 이 나라가 이렇게 존재하도록 목숨을 바친
외국인 군인들의 묘지라면?
유엔기념공원! 일년 내내 낮 시간 동안 무료로 공개되어 있는데도 바로 이웃에 있으면서 한 번도 찾아 보지도 않는 분들이 많은 것 같다. 묘지를 산 속이나 먼 곳에 두고 일년에 한 두 번씩 찾아 보는 우리의 문화와 관련이 있지 않나 싶다. 이 점에서 묘지를 주택 가까이 두고 가족들이 늘 찾아보는 서양의 문화와는 차이가 있다고 본다. 사실 유엔기념공원을 사람들에게 잘 알리기가 쉬운 일은 아니다. 무릇 사람은 보고 싶은 만큼 본다라고 갈파한 줄리어스 시저의 말과 같이 보고 싶지 않을 때에는 이를 알릴 방법이 없는 것이다. 한편 한번 형성된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기도 쉽지 않다. 사람에게는 이미 인식된 것을 좀처럼 바꾸지 않으려는 성향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하기 때문에 우리는 늘 마음을 열어두고 어떠한 고정관념도 쉽게 고칠 수 있는 자세가 필요한 것이 아닐까 싶다.
흔히 유엔공원이라고 알려져 있는데 정확한 명칭은 재한유엔기념공원이다. 주위에 평화공원과 조각공원이 있어서 자칫하면 이들 공원 중의 하나인 것으로 혼동을 일으킬 수도 있는 것이다. 원래 이름은 재한유엔기념묘지였으나 그 이름이 우리네 정서적으로는 친숙하지 않다 해서 2002년에 묘지를 공원으로 바꾼 것이다. 유엔기념공원은 1951년부터 한국전쟁 중에 전사자들의 임시 묘지로 사용되다가 휴전이 성립되어 전쟁이 끝나서도 본국으로 송환되지 않고 여기에 남아있는 유엔군 전사자들을 위해 1955년 한국 정부에 의해 영구히 묘지로 제공된 것이다. 그 후 이들을 위해서 유엔과 대한민국 정부간에 협정이 체결되었고 이에 따라 한국정부는 이를 유엔에 기증을 했다. 1974년까지 유엔의 기관인 유엔한국통일부흥위원단(UNCURK)이 직접 관리를 했으나 1974년 유엔한국통일부흥위원단이 해체됨에 따라 그 관리업무는 관리위원회로 넘어왔다. 관리위원회는 한국 정부에서 인정한 국제기구의 자격으로 지금까지 유엔기념공원을 관리하고 있다.
유엔기념공원에는 약 2 3백 명의 유엔군 전사자들이 안장되어 있다. 그들은 국적별로 영국, 카나다, 호주, 뉴질랜드, 남아프리카 등 영연방 5개국, 터키, 네델란드. 프랑스, 미국, 노르웨이와 한국 등 모두 11개국의 국민들이다. 이들 중 한국인들은 당시 카츄샤로서 유엔군으로 참전했다가 전사한 군인들이다. 미국인 안장자들은 엄밀하게 말하면 전사자가 아니고 전후 유엔군 사령부에서 근무하다 사망했을 때 본인들의 희망에 의해 남아있는 경우이다. 안장자를 나라별 숫자로 보면 영국이 885명으로서 제일 많고 터키(462), 카나다(378), 호주(281), 네델란드(117), 프랑스(44), 한국(36), 미국(36), 뉴질랜드(34), 남아프리카(11), 노르웨이(1)의 순이다. 영연방국 전사자들은 모두 1,589명이 안장되어 있는데 이는 영연방 총전사자(2,117)의 약 75 퍼센트에 해당한다. 밖에서 죽으면 안으로 데려오지 않는다는 것은 영연방 국가들의 관습 때문이라고 하는데 아마도 그 관습은 대영제국을 만든 진취적인 성향에서 나온 것이 아닐까 싶다. 이에 반해 미국인 전사자는 36,492명으로서 한국전의 총 전사자 40,896명 중 약 90 퍼센트를 차지하지만 전쟁이 끝나고 모두 본국으로 송환되었다.
동서양을 물론하고 죽은 자를 어디에 묻은 들 가족들이나 후손들이 그를 기억하고 무덤을 찾는 것은 불과 몇 세대 즉, 백 년도 채 되지 않는 기간 동안이다. 그렇다면 그 차이는 죽은 자의 가족이 시신을 본국으로 가지고 가서 묻어 놓고 자주 찾아 보는 것과 현지에 묻어 두고 가끔 찾아 와서 보는 것뿐이다. 영연방 국가들의 관습과 달리 왜 미국 정부는 적지(敵地)도 아닌 한국 땅에서 전사한 자국인을 한 사람도 빠짐없이 데리고 갔을까? 혹시 미국은 1950년대 당시 한국을 언제라도 적지가 될 수 있는 매우 위태로운 나라로 본 것은 아닐까 하는 의구심도 든다. 지금의 한국 상황이라면 그런 위험이 없다고 자위해 보지만 그것도 잠시다. 우리의 독단적인 생각일 뿐 혹시 지금도 밖에서는 우리나라를 위태로운 나라로 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사실 불과 한 달 전까지만 해도 적지 않은 사람들이 그런 위기감을 느끼지 않았던가. 오늘 날 전쟁이란 총칼 들고 싸우는 전쟁 이외에도 각양 각색의 전쟁이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으니까 말이다.
우리 모두 알다시피 지금 우리나라는 전쟁의 폐허에서 일어섰을 뿐 아니라 세계 12대 경제 강국이 되어 있다. 다른 나라들이 이러한 한국과 조금이라도 더 가까워 지려는 것은 당연하다 하겠다. 참전국들이 한국이 어려울 때 도와준 혈맹이라는 점을 자랑스럽게 내세우고 있는 마당에 유엔기념공원의 역할은 그 만큼 크다고 볼 수 있다. 양자관계에 중요한 초석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 필자는 유엔기념공원의 역할에 대해서는 무엇보다 교육적인 면을 강조하고 싶다. 전쟁을 직접 체험을 하지 못한 전후 세대들은 한국전쟁에 대해 책을 보고 알거나 들어서 알 뿐이다. 미래 세대들이 유엔기념공원에 오면 한국전쟁의 결과 죽어서 묻혀있는 현장을 직접 보고 전쟁의 참화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 이 땅에서 다시는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 되겠다는 자각과 함께 평화를 지향하는 마음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내력과 미래 역할이 있는 유엔기념공원을 우리는 기쁜 마음으로 참배하고 싶은 마음이 들도록 가꾸고 있다. 작년 한 해 동안 약 20 만 명이 이곳을 다녀갔다. 그러나 이 숫자는 세계 유일의 유엔군 묘지로서는 부족하다고 본다. 에이팩 정상회의 장소인 누리 공원을 찾는 사람 수가 백만 명이 넘는다고 한다. 미국의 알링턴 국립묘지는 년간 3백만 명이고 일본의 히로시마 원폭 기념공원의 경우만 해도 년간 방문자 수가 백삼십만 명이 넘는다고 한다. 유엔기념공원의 경우 적어도 년간 방문자가 백만 명 이상은 되어야 할 것이 아닐까 본다. 부산시 당국의 통계에 의하면 부산을 찾는 외국인 수가 작년 경우 160 만 명이 넘었다는 데, 그렇다면 유엔기념공원을 찾은 외국인 수는 불과 그 숫자의 1 퍼센트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정작 와서 보면 감탄을 하면서도 오지 않는 이유는 단지 모르기 때문일 것이다. 모르는 이유도 인식 부족과 홍보 부족에 있을 것이다. 세계 유일의 유엔기념공원을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서 앞으로 유엔기념공원은 물론 부산시민 전체가 함께 더욱 힘을 모아 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