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값 비싼 대가 치른 ‘영혼의 고속도로’

  • 작성자최구식
  • 작성일2010-03-09 22:51:17
  • 조회2463

2010년 한국전쟁 발발 60주년을 맞이하여 UN군 및 한국군 전사자와 베트남전 참전 희생자를 추모하며 이 글을 올립니다. 1회 국가보훈처, 한국일보 주최 호국문예 부문 입상작으로서, 여행전문 잡지사에서 한국-베트남 수교 10주년을 기념하는 사업의 일환으로 필자와의 인터뷰를 거쳐 소개하기도 하였던 글입니다.
값 비싼 대가 치른 영혼의 고속도로
최구식
부산 UN기념공원(묘지) 자원봉사자 문화관광해설사
영혼의 고속도로
긴 고속도로 길이 만큼이나
줄지어 빽빽이 늘어선 정글 사이로
따이한 용사들의 발자취 가득하다.
밤이면 번쩍이는 섬광의 불빛 아래
적의 방향으로 총구를 내민다.
사람이 사람을 죽여야 하는
묘한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서 맞기 전에 먼저 쏘아야 하는
서부활극의 총 빼기 시합이다.
한치 앞도 볼 수 없는 칠흑 속
삶의 먹이사슬의 심장부에서 이름 모를 독충들 피를 빨아도
석고처럼 굳어져 눈알만 굴린다.
온몸의 전율 피를 말린다.
고향의 달밤이 그립다.
때 걸지 말고 몸 조심하라던
이 밤도 잠 못 이룰 골 패인 엄마 얼굴
스치는 구름 사이로 얼굴을 비추인다.
월남행 3부두 바레트호 선상에서
서로의 눈물을 보일세라
이별의 뱃고동 파도 멀리 사라지고
오륙도 관문 뱃머리 돌릴 때
눈물을 쏟는다.
소금보다 더 짠 이별의 눈물
밤 새워 살아있는 자신을 확인하며
같이 온 전우의 숫자가 줄어들어도
이별의 통곡, 전우야 잘 가라는
말 한 마디 못하고 내가 살아있음에
오늘 하루 안도의 숨을 쉬는
철저한 이기주의.
! 누구를 위해 죽고 죽어야 하나
배고픔의 한들로 고국의 빈곤을
총으로 해결하려는 이 땅의 위정자들
여기 죽어간 영혼의 숫자만큼이나
길어진 고속도로 또 다시 늘어뜨려
우리의 영혼 고향 길 만드려나



역동적 삶의 소용돌이에/ 젊음을 던진 나의 전우야/ 어느 날 그대/ 고국의 들녘에 먼 산 바래기로/ 향기 품은 꽃이어라.
내 살아 귀국하는 날/ 아니, 나 역시/ 못 갖춘 마침의/ 아침을 맞아도/ 오늘을 위해 탄생한/ 나의 영혼/ 나의 젊음/ 나의 산화/ 고귀한 생명/ 내 가슴에 담아/ 통일된 조국의 하늘 아래/ 부활하는 물망초이어라.

1969 7 3일 강원도 오음리에서 월남 전투 상황과 똑 같은 지형지물에서의 특수 적응훈련을 마친 우리 파월장병들은 군용열차에 몸을 실었다. 그리고 부산3부두에서 미 해군 수성선 바레트호에 군장을 풀고 실로 기나긴 여정에 올랐다.
이 지상의 모든 전쟁은 사라져야 한다!
바레트호의 우렁찬 뱃고동 소리를 뒤로하고 머나먼 중국 황하강의 상류에서 용트림하며 흘러내려온 월남(베트남)의 젖줄 메콩델타의 황토물이 바다로 유입되는 해양도시 나트랑(나짱)을 경유, 닌호아 백마 9사단 보충대에 도착했다. 월남에서의 첫째 날부터 베트콩들은 우리를 환영(?)이라도 하듯 박격포를 인정사정 없이 쏘아대 그 소음 때문에 잠을 제대로 이룰 수 없었다.

미국이 베트남 전 동안 현지 전역에 투하한 폭탄의 양은 세계 제 2차대전 때 연합군이 사용했던 분량을 능가했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런데도 끝이 보이지 않는 소모전은 지속되고 양쪽의 피해는 걷잡을 수 없이 늘어만 갔다. 지상에서 영원히 사라져야 할 이 모순의 굴레 속에 이념의 잣대로 선을 긋고, 부모형제에게 총칼을 들이대는 이 살육의 현장에서 평화는 진정 신이 내려주시는 축복임을 새삼 느껴야 했다. 그러면서도 전장의 포화 속에서도 자연의 섭리는 변함이 없어 갑자기 쏟아지는 스콜의 시원함에 몸과 마음의 피로와 긴장감을 어느 정도 씻어낼 수 있어 좋았다. 시원스레 쏟아지는 빗줄기에 온몸을 의탁하면서 마음 속으로 평화 역시 이 스콜처럼 어느 날 갑자기 우리 곁으로 다가오는 것일까?라고 저 멀리 먼산에 시선을 드리우며 상념에 젖기 일쑤였다.

백마사단 의무중대에서 6개월을 근무하고, 항구도시 나트랑의 제 254 미 육군 헬리콥터 긴급구출부대에 배치돼 통역 겸 구출요원으로 활약했다. 미 육군 정예부대 출신과 헬리콥터 조종사, 비행기 정비사, 위생병 그리고 백마부대에서 파견된 2명의 한국군 등 총 35명의 일급 요원들이 나트랑, 닌호아, 캄란, 팝란, 그리고 멀리는 라오스 국경지역까지 출동하는 맹활약을 펼쳤다. 미군과 한국군은 물론 작전 중 생포한 베트콩 부상자까지도 구출해, 지정병원으로 긴급 후송하는 것이 우리의 주요 임무였다. 이 부대는 일명 더스트 오프(Dust-Off 전쟁의 해결사) 부대라 불리었다.

험준한 산악지대와 정글지대에서는 헬리콥터가 착륙하지 못하고 10m 이상의 공중에서 비행기를 고정시키고 쇠밧줄을 내려서 환자를 끌어올려야 하는 구출임무는 지금 생각해봐도 등골이 오싹한 일이었다.
칠흑 같은 밤, 조명탄의 불빛 속에서 비바람이 몰아치는 악천후를 무릎 쓰고 적의 공격을 받으면서 임무를 수행하기란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들의 상상을 초월하는 일이다. 그러하기에 나는 아직도 그 후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봐온 어떠한 전쟁영화의 다이내믹한 연출도 더스트 오프의 구출작전에 견줄만한 것을 본 적이 없다고 단언할 수 있다. 그것은 오직 신께서 내리신 임무였고 신만이 우리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계신다는 것을 온몸으로 체득할 수 있었다.

2년여 동안의 베트남전 실전 참전을 통해서 인간의 한 생명의 고귀함을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어떤 형태의 전쟁이든지 전쟁은 이 지상에서 영원히 사라져야 한다는 단수하면서도 절박한 진리를 절감할 수 있었다. 아울러 나 자신이 거짓되지 않고 욕심 없는 삶을 살아야겠다는 평범한 좌우명을 깨우칠 수 있었다.

또 다른 전쟁과 테러와 납치, 그리고 이념과 종교전쟁의 조짐이 보이는 이 시대에 우리 모두 어떤 명분에 의해서 치러지는 전쟁의 참화가 얼마나 끔찍한지 공감했으면 하는 바램 간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