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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30 조선일보/한국 지킨 佛·에티오피아 전우들, 67년 만에 재회

한국 지킨 佛·에티오피아 전우들, 67년 만에 재회

프랑스 6·25 참전용사협회 이끄는 파트리크 보두앵 생망데市 市長
1951년 양구 전투 치른 兩國 병사, 다음 달 에티오피아서 만나기로
韓정부 주선 없는 교류는 드물어

 "1951년 프랑스군과 에티오피아군은 나란히 강원도에서 공산 세력에 맞서 싸웠습니다. 특히 양구에서 치른 펀치볼 전투는 양국 군대가 번갈아 가며 참가한 인연이 있죠. 이제 노병들이 만나 67년 전 빛나는 무공을 추억하려 합니다."

프랑스 6·25전쟁 참전용사협회장인 파리 외곽도시 생망데의 파트리크 보두앵(65) 시장은 "기분 좋은 여행을 떠난다"며 들뜬 모습이었다. 그는 참전용사 5명, 고인(故人)이 된 참전용사들의 가족 4명과 함께 다음 달 4일 나흘 일정으로 에티오피아를 방문한다.


수도 아디스아바바에서 양국 참전용사들은 6·25의 기억을 나누는 자리를 갖는다. 에티오피아 참전용사 10여 명이 프랑스 전우들을 맞이할 예정이다. 28일 생망데 시청에서 만난 보두앵 시장은 1953년 이승만 대통령이 프랑스군에 준 표창기(旗)를 책상 뒤에 걸어 놓고 업무를 보고 있었다.

프랑스의 6·25 전쟁 참전용사협회장인 파트리크 보두앵 생망데市 시장이 집무실에 걸어둔 표창기(旗)를 들어 보이고 있다. 6·25 전쟁 당시 이승만 대통령이 프랑스군에 수여한 것이다.

한국 정부의 주선 없이 해외 국가의 6·25 참전용사끼리 교류하는 것은 전례를 찾기 어렵다. 에티오피아 주재 대사관에 근무하는 프랑스 무관(武官)이 비슷한 경험을 한 양국 참전용사들을 만나게 해주자고 제안했고, 보두앵 시장이 적극 화답해 성사됐다.

프랑스 측에서는 단장의 전투에서 무공을 세운 자크 그리졸레(92)씨, 작전 때마다 맨 앞에 나섰던 디디에 드 샤젤(90)씨 등이 참가한다. 보두앵 회장은 "제일 어린 분이 88세일 정도로 다들 연로하지만 흔쾌히 비행기를 타기로 했다"고 했다.

작고한 참전용사들의 가족들도 한국과 각별한 인연을 갖고 있다. 한국에 파병된 프랑스군을 이끈 랄프 몽클라르(1892~1964) 장군의 사위인 베르나르 뒤푸르씨가 동행한다. 예비역 대령인 뒤푸르씨는 작년 말 몽클라르 장군의 무남독녀였던 아내 파비엔느씨가 암으로 별세하는 아픔을 겪었다. 필리프 나바르씨는 2004년 별세한 참전용사 아버지의 유언을 받들어 유골을 양구군의 '프랑스 참전 기념비' 주변에 뿌렸다. 6·25 당시 전사한 가브리엘 플라지씨의 아들·딸도 에티오피아에 간다.

프랑스군은 6·25전쟁에 3421명이 참전해 262명이 전사했다. 200명가량 생존해 있는 것으로 추정되며, 연락이 닿는 노병은 80명가량이다. 에티오피아는 황실 근위대 소속 정예 요원 위주의 '칵뉴(Kangnew) 부대'를 우리나라에 보냈다. 칵뉴란 '초전박살'이라는 뜻으로 당시 하일레 셀라시에 황제가 이기고 돌아오라는 뜻에서 지어줬다. 칵뉴 부대는 253번의 전투에서 모두 승리했고, 한 명도 포로가 되지 않은 것으로 유명하다. 6037명이 참전해 121명이 전사했다.

보두앵 시장은 그동안 15차례 한국 을 오가며 활발하게 6·25 기념사업을 해왔다. 프랑스 참전 기념비가 있는 양구군 명예 군민이기도 하다. 손녀들에게 한복을 맞춰줄 정도로 한국에 애정이 넘친다. 국회의원 겸임 시절(2002~2012) 프랑스 의회 한·불친선협회장을 지냈다. 그는 "한국과 인연을 이어가는 일은 항상 즐거웠다"며 "참전용사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뭐든지 하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