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6.07 조선일보/ [특파원 리포트] 6·25 용사들에 돌 던지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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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2026-06-07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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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리포트] 6·25 용사들에 돌 던지던 사람들
6·25전쟁에 참전했던 프랑스군 앙드레 다차리(1932~2025), 자크 그리졸레(1928~2024)씨의 유해가 최근 부산 유엔기념공원에 안장됐다. 두 노병(老兵)의 생전 육성이 재불 사진작가 신중환(47)씨의 2023년 작업 기록으로 남아 있다. 이미 건강이 좋지 않았던 그리졸레씨는 “한국의 통일을 염원한다”고 간신히 말했다. 다차리씨는 1953년 파병 후 두 차례 포격을 당해 죽을 뻔했다. 그가 컬러 카메라로 촬영한 한국의 풍경은 어제처럼 선명하다.
다차리씨는 “현재 번영한 한국의 재건에 기여했다는 자부심이 크다”며 “푸틴이 침공한 우크라이나에선 그때 한국과 똑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했다. 6·25 때 파병된 프랑스군은 연인원 3421명. 270명가량이 전사했는데 파병국 중 가장 높은 비율이다. 양평 지평리, 양구 단장의 능선, 철원 화살머리 고지 등 격전지에 계속 투입됐기 때문이다. “우린 썩어가는 시체와 진흙 더미에서 살았다.” 생존한 미셸 오스왈드(94)씨의 말이다.
참전 용사들은 프랑스 좌파 진영이 자신들을 ‘공산주의 형제들을 죽이러 가는 미제 용병’이라고 비난하는 목소리를 견디기 어려웠다고 했다. 당시 프랑스 최대 정당이 공산당이었다. 당 기관지 뤼마니테(L’Humanité)는 “북한이 남한의 도발에 대응한 것에 불과하다”며 북침을 주장했다. 사르트르 등 좌파 지식인도 동조했다. 마르세유 항구에서 파병선에 오른 장병들에겐 야유가, 귀국한 부상병들에겐 돌이 날아왔다.
6·25 때 한국을 지원한 나라는 67국, 당시 세계 독립국은 91국이었다. 유엔군은 단일 국가를 위한 인류 역사상 최다 민족·국가 연합군이었다. 5년째 러시아에 맞서 고군분투하는 우크라이나를 보면 상상도 안 되는 기적이었다. 선진국이 된 현재를 우리는 공기처럼 당연하게 여긴다. 그러나 다차리·그리졸레·오스왈드씨 같은 청년들이 난생 들어보지도 못한 최빈국에 오지 않았다면 지금 우리가 사는 나라가 한국일까?
‘양갈비’ ‘발기한 관짝’…. ‘감사의 정원’을 향한 수준 이하의 조롱은 대한민국 체제에 대한 증오이자 참전 용사들에게 던지는 돌이었다. 대통령의 현충일 추념사엔 2년 연속 ‘북한’도 ‘6·25′도 없었다. 3·1절이나 경찰·소방의 날 기념사처럼 들리기도 했다. 북한을 ‘인민공화국’으로 부르는 장관의 국가보훈부가 “여기서부터 대한민국이 모시겠다”며 참전 용사 안장식을 주관하는 광경은 이상했다.
“저는 아직 살아서 말할 수 있는 증인입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도 곧 끝나겠지요.”(미셸 오스왈드) 3년 전 29명이었던 생존 프랑스 참전 용사는 이제 17명이다. 이들의 모습을 담은 헌정 사진전이 오는 19일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에서 개막한다. 프랑스에서 2022·2023년 열린 전시 주제는 각각 다음과 같았다. ‘영원히 우리의 기억 속에’ ‘영원히 당신들의 기억 속에’.
프랑스군 소속으로 6·25전쟁에 참전했던 프랑스인 앙드레 다차리(1932~2025)씨가 1953년 파병 이후 한국에서 찍은 전우들과 한국 아이들의 모습. /앙드레 다차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