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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기념공원 해설 근무하면서 생긴 일화들

  • 작성자전대홍
  • 작성일2010-06-04 01:15:38
  • 조회2477

유엔기념공원 해설 근무를 하다보면 이런저런 일화들이 많이 생깁니다.
아직 근무경력이 많지 않아 많은 일화는 없습니다만, 그간 있었던 몇가지만 올려봅니다. 관심있으신 분만 읽어보세요!
 
 
유엔기념공원 일화들 (UNMCK)
(웹진 투고용)
 
2010 5 26일 작성                                         
부산문화관광해설사 제4기 전대홍
 
요새 뉴스를 들으면 정말 놀라운 소식이 많다. 천안함 피폭에서부터 원인이 밝혀지기까지 과정도 그랬지만, 원인이 ‘북한 어뢰’로 밝혀지고 나니, 더욱 고조된 각국의 분위기는 가히 일촉즉발이라는 표현이 무색할 정도다. 아마 전 세계적인 뉴스거리임이 틀림없다. 몇 년 전에 이 정도의 정세라면, 모두 밤잠을 설치고, 노심초사하며, 간을 졸여야 할 당연한 시점인데도, 어쩌면 이렇게 하나같이 강 건너 불구경 꼴인지 모르겠다. 주식은 폭락하고, 국외 자금은 이탈하고, 투자나 여행객도 끊기고, 어쩌면 국외 도피자도 일어날 만한 소식이 분명한데, 아무 데서도 별 기미가 없다. 이런 생각이 비단 나만은 아니리라. 아마, 양치기 소년의 우화효과이리라. 제발 진짜 여우는 나타나지 않기를 기원해본다.
 
요새 유엔기념공원 해설을 맡고부터는 아무리 떨쳐버리려 해도 전쟁에 대한 비참한 결말에 여러 가지 많은 생각이 떠나지 않는다. 더욱이 올해는 6.25 한국전쟁이 발발 한지 꼭 60주년이 되는 해이다. “시간은 역사와 함께 달려가고, 세월과 함께 사라진다!”란 말은, 유엔공원(United Nations Memorial Cemetery in Korea) 추모홀에서 상영되는 홍보 상영 물의 한 대목이다. 이처럼, 아무리 커다란 사건도 세월이 지나면 잊히고 퇴색된다는 말이다.
그런가 하면 이런 기사가 있었다. "6.25전쟁은 과거가 아니라 현재와 미래다."란 제하로, 미국에서 ‘6.25 한국전쟁 휴전 기념일 제정’에 앞장선 ‘한나 김 특별인터뷰’의 기사이다. 내용을 요약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2009 7 24일 오바마 미 대통령은, “판문점에서 휴전 협정이 체결되고 56년이 흐른 뒤에도 미국인들은 한국전 참전용사들의 용기와 희생에 감사하고 있다.”라는 포고문을 발표하였다. 이는 매년 7 27일을 모든 미국인이 고귀한 한국전 참전용사들에게 경의를 표하고 감사를 표시하는 국가기념일로 제정한다는 의미이다. 이에 앞서 미 하원은 2009 7 21, 또 상원은 7 24일에 ‘한국전 참전용사 인정법(Korean War Veterans Recognition Act)’을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이로써 우리가 잊고 있던 6.25가 미국 땅에서 ‘6·25 정전기념일’로 영원히 기리는 날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한국전 정전기념일'은 이제 미국에서 현충일(5월 마지막 월요일) 다음으로 조기를 게양하는 제2의 기념일이 됐다. 미 의회와 오바마 대통령의 한국전 휴전일을 국가기념일로 결정 선포하기까지 이를 달성하기 위해 미국 사회에서 동분서주(東奔西走) 노력한 사람이 있다. 바로 재미교포 ‘한나 김(Hannah Kim)’ 양이다. 이 법 제정에 앞장선 ‘한나 김’은 26세의 한인 1·5세다. 김 양은 미국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에서 영문학 학부과정을 전공했다. 그는 미국으로 돌아가 미국평화연구소에서 한국전 자료를 정리하는 일을 하면서 6·25에 관심을 뒀다고 한다.
재향군인회 회장 직무대리 ‘김홍열’은, ‘한나 김’의 역할이 알려지자 지난 2009 8 6일 감사 서한을 보내고 2009 9 14일부터 미국, 터키 참전용사 재 방한 초청에 ‘한나 김’을 특별 초청했다. 이에 코나스 (http://www.konas.net)는 한국에 미리 와 있던 ‘한나 김’을 10일 향군회관에서 만나 한국전 휴전일 제정에 노력한 그간의 활동상과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소상히 알아보는 특별 인터뷰를 했다.』라는 기사이다.
 
이상에서 보는 바와 같이 우리는 현재 휴전상태의 나라이고, 끊임없는 도발과 침탈이 이루어지는 현실에 직면한 나라이며, 국내보다는 국외에서 더 관심이 고조되고 있는 나라에서 살고 있다.
그런가 하면, 세계에서 유일하게 유엔묘지를 훌륭하게 관리하고 있고, 시설 역시 근대 문화유산(24. Oct. 2007. Cultural Heritage Assets No. 359)으로 등록된 유산이 있다. 하지만, 부산시 차원의 문화유산으로서 홍보 관리에는 좀 소홀한 부분이 있었던 것 같다. 유엔공원 홈페이지를 떠나서는 해설사가 활용할 자료가 없다는 것이 그 반증이다.
문화유산으로서 국제적 관심을 살 수 있고, 훌륭한 가치가 있는 유엔공원이니만큼, 이 분야에 종사하는 모든 부산 시민은, UN 기념공원에 대한 여러 방면에 인식 변화를 가져와, 본 공원이 명실상부한 세계 유수의 문화유산으로서 역할을 다 할 수 있기를 간절히 기원해본다.
 
여기서는 유엔기념공원 각 분야에 대한 자세한 나열식 해설보다, 해설 중에 있었던 일화들 몇 개를 소개할까 한다.
 
먼저, 영국 어느 노부부의, 57년 만의 우리 유엔기념공원 방문 이야기다.
어느 날 관리처로부터, 6.25 한국전쟁에 참여했던 영국인 부부의 방문이 있으니 해설해 드리라’라는 전달을 받고, 동료 안내 해설사와 동행하여 해설에 임했다. 인사를 나누며 알고 보니, 입대 전 21살이던 총각과 18살이던 처녀는 열열이 사랑하는 사이였으나 결혼식은 하지 못한 상태에서, 총각은 한국전에 참여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 후 두 남녀는 거의 매일 시간만 나면 서로의 사정을 편지로 교환했었다고 한다. 그때의 수많은 편지를 지금도 간직하고 있다고 한다.
 
해설을 하면서 서로 궁금한 점을 이야기하다 보니 어느덧 영국군 묘지에 이르렀다. 그때 그 부부는 배낭에서 영국 국기와 소형 조화를 한 줌 꺼내는 게 아닌가. 그리고 누군가를 열심히 찾고 있다. 그때 그의 부인도 뭔가를 열심히 찾다가 남편을 부르며 “여기 찾았어요!”라고 외친다. 알고 보니, 그들은 전쟁 중 편지를 교환하며, 매일의 전황과 동료의 전사나 부상 소식까지 자세히 전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 부인은 남편 동료의 이름을 알게 되었고, 그 이름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기에 먼저 찾은 것이다. 국기를 꽂아주고 꽃도 꽂아주며 간단한 묵념을 한다. 885기나 되는 전체 묘역을 다 돌며, 기억하는 모든 친구를 찾아내고 있다. 정말 대단한 정성이다. 대단한 부부이다. 호기심이 동해 몇 마디 물으니 즉시 답을 해준다.
자기는 운이 좋아 무사하게 전쟁을 마치고 귀국했으며, 귀국 후 결혼하여 지금까지 잘 산다고 한다. 항상 한국을 방문하고 싶었지만, 기회가 없는데다 경제적 사정으로 미루다 이번에야 올 수 있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매년 많은 참전용사를 초청하여 위로 잔치를 하지만, 참전 용사가 너무 많아 선발되기는 하늘의 별 따기라는 말이다.
사정을 보니 그렇다. 유엔군 총 참여 인원 175만여 명 중 전사자 4만 천여 명을 제외하면, 170여만 명의 귀국자가 있는데, 매년 몇백 명 초청에 아무나 선발되기는 정말 어려운 처지 같다. 듣고 보니 이해 가는 말이다. 그 부인, 남편보다 더 열심히 남편 친구 이름을 찾아내는 것 보고 계속 경탄을 금치 못했으며, 그들의 처절하고 난망했던 당시의 생각이 떠올라 숙연해 질 수밖에 없었다.
 
다음은 미국 관광객의 해설 중 한 일화이다.
전 묘역을 다 설명하는 중간에 ‘유엔군전몰장병추모명비’가 있다. 사실 유엔기념공원 내에는 기막힌 조형물과 나무와 꽃들이 있으나, 그 중 가장 자랑스럽고 설명하기 뿌듯한 곳은 바로 이곳이다. 우선 규모 면에서 추모객을 압도하지만 여러 조형물의 조화 역시 놀라운 시설이다. 한국전쟁 중(1950.6.25~1953. 7. 27) 전사한 4만여 명 유엔군 전몰장병들의 이름을 모두 새긴 추모 조형물이다. 우주를 뜻하는 원형수반에 하늘과 전몰용사들의 이름이 새겨진 명비, 그리고 보는 이들이 반영되어 하나 됨을 의미하는 수반, 그 안에는 전쟁을 상징하는 철모, 맞은편에서 평화로운 꽃으로 승화하는 뜻을 표현한다. 수반 가운데 솟아있는 꺼지지 않는 불꽃은 영원한 세계평화와 전몰장병들의 영혼에 대한 추모를 의미한다. 음양의 조화를 반영한 이 추모명비는 아무리 봐도 썩 잘 만든 것 같다. 그 위용을 보고는, 국 내외 방문객을 막론하고 모든 사람이 혀를 내 두르고, 숙연한 마음을 가지게 되고, 고맙고 감사한 마음을 느끼게 하기에 충분하다. 벽 입구에 하얀 글씨로 새겨진 이해인 수녀님의 감사 추모시도 한몫을 한다.
그런데 한참 설명하는 중에 미국인 젊은 커플이 나를 의미심장하게 부르더니만 정말로 정중하게 “정말 고맙습니다. 한국인의 마음이 이런 것인 줄 몰랐습니다!”라고 최대의 예의를 표하며 감사인사를 한다. “아닙니다. 우리가 몇천 배 더 고맙지요. 그런 말씀 마세요!”라고 즉답이 교환된다. 상상으로, 피상적으로 느끼던 한국전, 그 처절함, 미군의 희생, 한국인의 뜻에 감동 받아 보답하는 행동 등이 결합한, 공감이 흐르는 순간이다. 누구든 앞으로 유엔 공원에 가거든 다른 것 다 보지 못하더라도, 이곳은 꼭 보시라고 권하고 싶다.
 
다음은 한국전 참전 한국인 노병의 방문 일화이다.
어느 터키의 고위층 인사가 방문하는 날, 많은 한국인 노병이 초청되었다. 미리 도착한 노병이 안내를 요구하기에 동행하게 되었다. 그리고 아는 지식 모르는 지식 총동원해 해설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대대장님! 제가 왔습니다. 제가 대대장님 돌아가신 날 보초 서면서, 시신 운반 시 출입문을 총 개머리판으로 부수고 문을 열었던 아무개입니다!”라고 울먹이는 소리로 외치며 감격하는 게 아닌가.
내용을 듣고 보니, 자신은 친구와 함께 소년병으로 징집돼 전장에 투입해서 보초를 서는데, 지난밤 전투에 터키의 참전 용사 대대장이 전사했다는 소식을 들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대대본부에서 보초를 서는 중 그 시신의 운구를 보게 되었고, 함께 후퇴를 했다는 것이다. 그 후 살아남아서 지금은 잘 지내고 있으며, 터키대사관과 평소 연결이 되어 있기에 주요 행사에 초청을 받는다는 것이다. 말로만 전해 듣고, 여러 번 여기에 왔었어도 직접 찾아볼 생각은 못했는데, 오늘 우연히 찾았다는 것이다. 얼마나 짜릿하고 감동적인 순간인가. 그 순간을 한 번 회상해 보면 답이 나올 것 같다.
 
다음은, 한국전쟁에 참전했다가 전사한 호주군 장교의 부인이 60년 만에 부산 유엔기념공원에 잠든 남편 곁에서 영면에 들어간 이야기다.
2010 4 14일 오후 부산 유엔기념공원에서 영연방 참전용사 등이 지켜보는 가운데 한국전쟁에서 전사한 호주군 장교의 부인 낸시 밀리센트 휴머스톤씨의 유골함을 남편의 묘 옆에 합장하는 의식이 진행되었다. 영연방국가(영국, 호주, 캐나다, 뉴질랜드) 6·25 참전용사와 유가족 209명 등이 참석한 가운데 ‘영연방 한국전쟁 전몰장병 추모 및 호주 미망인 합장식’이 있었다. 이날 외국 전몰장병 부부의 영혼이 60년 만에 만난 ‘특별한 의식’의 주인공은 34살의 나이에 호주군 대위로 한국전쟁에 참전했다가 1950 103일 전사한 케네스 존 휴머스톤씨의 부인으로 지난해 숨진 낸시 밀리센트 휴머스톤씨이다.
호주군 참전용사가 호주에서 운송해온 낸시 씨의 유골은 남편 묘 옆에 안장됐으며, 이는 본 묘역의 네 번째 부부합장 묘이다. 그날 합장 식은, 낸시 씨가 지난해 숨지기 직전 “유엔기념공원에 잠든 남편과 함께 있고 싶다!”라는 유언에 따른 것이다. 일본에서 결혼 3주 만에 남편을 전쟁터로 떠나보내고 자식도 없이 수절하며 간호봉사활동으로 평생을 보낸 부인은, 머나먼 땅에서 평화를 위해 싸우다 숨진 남편을 그리워했던 것으로 알려져서 뜻있는 세계인의 주목을 받았다. 그 뉴스를 접한 많은 사람이 일부러 그 묘를 보기 위해 방문하고 있고, 당분간 필수 추모코스가 되고 있다. 앞으로 한 기의 예약된 부부합장묘가 더 있다.
 
마지막으로 다문화 가족 외국인 어린 학생들 방문 일화이다.
지름 우리나라에 다문화 가족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는 사실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에 따라 육아문제, 교육문제 역시 심각하다는 것 다 아는 사실이다. 다행히 여러 형태의 교육 기관이 있어 일조하고 있다고 본다. 어린 학생들이 모국어인지 타국어인지 분간도 못 하고 우리말을 배우고 영어를 배운단다. 어느 날 그런 학생 단체 20여 명이 방문하였다. 내가 한마디 영어나 우리말로 하면, 수행한 선생님들이 영어로, 중국어로, 몽골어로, 베트남 어로 다시 통역하는 다국어 통역현장이다. 그중 아주 주의력 부족하고 수선을 떨기만 하던 몽골 나라 어린아이가 선생님에게 뭐라고 묻는 것 같다. 알고 보니 “왜 우리 몽골 병사 이야기는 없어요?”이다. 그 옆에 중국 아이도 서툰 말로 같은 질문을 하는 것 같다. 선생님 역시 어려운 답이고, 나 역시 쉽고도 어려운 질문이다. “너의 나라 군인은 한국전쟁에 참여하지 않았단다.”라고 쉬게 대답하면 되지만, “왜요?”라고 물으면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 난감해서다. 이글 보고 정답을 아시는 분은 댓글로 달아주시기 바랍니다.
 
이상, 유엔기념공원에서 해설업무 수행 중 있었던 일화를 몇 개 소개하는 것으로 이야기를 전개해 봤다. 아직 유엔공원해설 업무가 짧기에 일화가 많지 않다. 얼마간 일하다 보면 아주 기발하고, 특색 있는 일화가 많이 생기리라 기대한다, 다음 기회에 정리하여 다시 써 볼까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