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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3.06 부산여성신문/[다민족이야기] 불가리아 소피아, 봄, 그리고...

[다민족이야기] 불가리아 소피아, 봄, 그리고...

오민경의 다민족 이야기
<불가리아 소피아, 봄, 그리고...>
지루한 흰 눈 속에서 앙증맞은 스노우 드롭이 누구보다도 먼저 고개를 내밀면 나는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다가올 봄을 기대했었다.
머지않아 눈이 녹으며 뾰쭉뾰쭉 온 천지에서 생명들이 꿈틀대는 우렁찬 교향악이 땅 밑으로부터 들려 올 무렵 (누구는 잔인하다고 표현을 했었다) 노란 수선화들이 어느 날 갑자기 내 앞에 나타나는 것이었다.
눈이 녹아 질퍽해진 성급한 봄 날 시장엘 가면 꽃샘바람에 볼이 빨간 불가리아 村婦들이 꽃을 팔았다. 집에서 꺾어 들고 온 노랑 수선화들이었는데 한 바케츠 몽땅 다 사겠다고 손짓 발짓 하면 못 믿겠다는 듯 얼굴 가득 번지던 즐거운 표정들을 잊을 수 없다. 그 얼굴에 나의 하루도 즐거워지는 것을.
앞마당의 수선화가 질 무렵이면 이번에는 저쪽 마당에서 거침없는 색의 튤립들이 기를 쓰고 대지 위로 합세했다. 시선을 사로잡는 빨강, 노랑, 분홍 튤립들은 햇빛 아래서는 활짝 얼굴을 폈다가는 어스름이 깔리고서야 얌전히 그 얼굴을 가린다. 밤의 妖婦 쟈스민과는 거리가 멀었다.
튤립의 초록빛 잎과 줄기는 원색의 꽃과 잘 어울리는 작품이다. 이브 생 로랭인들 이런 디자인을 할 수 있었을까 튤립은 병에 꽂기가 만만치 않다. 태양 아래 大地에 자유롭게 피어있는 모습이 제일이다. 집단농장서 키워져 포개진 채 비행기를 타야하는 혹독한 운명의 튜립과는 비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는 청초한 보라 빛의 히야신스가 뒤를 이었었는데 겨우내 어깨를 추운 대지 위에 들어내고도 다음해에 어김없이 풍성한 자태를 뽐낼 줄 알았다. 시크라멘 그리고 귀여운 바이오렛도 내 기억의 봄의 交響樂에서 빼놓을 수 없다.
사람들은 나이 숫자대로 장미꽃을 받으면 그리 좋은가 보다. 내 생애 그런 기억이 없지만 이런 기억은 간직하고 있다.
어느 시골 고아원에 갔을 때였다. 집시 소녀가 분홍빛 튤립 세 송이를 내게 건네주었을 때 아, 내가 어떻게 그 애절한 꽃 세 송이와 소녀의 크고 검은 눈망울을 잊을 수 있겠는가
명함이 붙은 어떠한 거창한 부케보다도 아름다운 것을. 초여름의 라이락 향기는 내 기억에서 지금도 진동을 한다. 음악회에 온 어느 불가리아 노동자를 잊을 수 없다.
하루 노동 후 집 마당의 보라 빛 라이락을 한 묶음 꺾어 들고 온 그를 나는 왜 공연자 보다 더 기억하고 있는가.
음악회가 끝나자 이 꾀죄죄한 노동자는 그러나 상기된 눈빛으로 피아니스트에게 다가갔다.
그리고는 포장이라는 개념도 잊은 수수하면서도 촌스러운 그러나 마음이 가득 담긴 라이락 다발을 건네는 것이었다.
이 노동자의 삶의 질이 라이락 향기만큼이나 부럽다는 걸 음악은 부르주아만을 위한 것은 아니라는 걸 노동자에게 노동이나 勞組만이 다가 아니라는 걸. 봄은, 음악은, 꽃은 누구나 누릴 가치가 있다는 걸. 보랏빛 라이락 향기가 내게 일깨워준 것이다.
(2002/03/08 불가리아 소피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