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메뉴 바로가기 본문으로 바로가기

정보마당

평화와 자유를 사랑하는 세계인들 누구나
유엔참전용사의 희생에 감사하고 추모할 수 있습니다.

언론보도

유엔기념공원과 관련한 신문, 잡지 등의 "언론 보도기사 모음" 입니다.

2019.04.10 부산일보/“한국전 당시 시신 90여 구 수습 신원 확인 못할 땐 울고 싶었죠”

“한국전 당시 시신 90여 구 수습 신원 확인 못할 땐 울고 싶었죠”

10일 오전 영국군 참전용사 제임스 그룬디 씨가 부산 남구 유엔기념공원을 둘러보고 있다. 이재찬 기자 chan@

“19살에 한국으로 향하는 배를 탔습니다. 한번도 들어보지 못한 낯선 나라였죠. 젊은 우리는 어렵지 않은 전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10일 오전 11시께 부산 남구 유엔기념공원의 한 사무실. 영국군 참전용사 제임스 그룬디(88) 씨가 하얀 중절모를 벗고 처음 한국으로 향한 순간을 회상했다. 1951년 2월, 낯선 땅을 밟은 그는 이내 생각이 바뀌기 시작했다. 6·25 전쟁의 참혹함이 곧 그의 눈앞에 펼쳐졌다.

영국 참전용사 제임스 그룬디 씨

1988년부터 매년 유엔공원 찾아 

척추암 투병… “사후 전우 곁에” 

“시신이 엉켜 있거나 군번줄과 수첩의 이름이 일치하지 않을 때도 있었습니다. 신원을 확인하지 못하면 울고 싶을 정도로 가슴이 아팠습니다.” 

시신수습팀에 배치된 그는 부산과 대구 일대의 시신 90여 구를 수습했다. 하지만 60여 구는 부패가 심하거나 시신이 엉켜 있어 ‘무명 용사’로 남게 됐다. 책임감이 생긴 그는 복무를 연장해 총 10여 개월 동안 땅에 묻힌 전우 찾기에 헌신했다. 

“당시 한 마을에서 어떤 소녀가 제게 사과를 건넸습니다. 그런데 돌아오는 길에 그곳은 폐허가 돼 있었습니다. 아직도 그 소녀가 꿈에 나타납니다.” 

영국에 돌아온 그룬디 씨는 한동안 트라우마에 시달렸다. 특히 그 소녀를 여전히 마음 한구석에서 떨쳐내지 못했다. 주변에는 한국을 언급하지 않으려는 전우들도 많았다고 했다. 그는 총상을 입고 평생 부인의 간호를 받고 살아온 존 골딩 씨의 이야기를 꺼내며 고통을 겪은 전우들을 떠올렸다.

“이름을 알아내지 못한 채 묻은 전우들을 찾아오는 게 제 사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을 돌보기 위해 매년 한국을 찾고 있습니다.” 

1988년부터 매년 부산을 찾는 그는 현재 척추암을 앓고 있다. 이날 그는 불편함을 뒤로 한 채 유엔기념공원을 거닐었다. 그 역시 세상을 떠나면 이곳 전우들 곁에 안장될 예정이다.

그는 마지막으로 “여러분의 내일을 위해 우리들의 오늘을 바쳤다”는 전우들의 메시지를 기억해 달라고 부탁했다.

이우영 기자 verd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