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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0.03 국제신문/ “살았다면 유명 축구선수 됐을 삼촌…결코 헛된 희생 아냐”

 

“살았다면 유명 축구선수 됐을 삼촌…결코 헛된 희생 아냐”

UN공원에 잠든 용사들…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 <4> 영국군 故 로버트 아스텔

 

 

- 워릭셔 로열리밍턴스파 출신

- 유명클럽 입단할 수 있었는데
- 한국전 참전해 19세에 전사

- 그의 조카인 앤디 아스텔
- 서울올림픽 당시 한국 방문
- 삼촌 묘소 찾아 참배하기도

- “목숨 바쳐 싸운 참전군인 위해
- 한국, 평화와 통일 이뤘으면”

“삼촌이 다시 영국으로 돌아왔다면, 매우 성공적인 축구선수가 됐을 텐데…. 삼촌은 영국 유명 축구 클럽의 테스트를 받아 상위 리그에서 뛰는 것으로 돼 있었다.”

지난 8월 중순 영국 워릭셔의 로열 리밍턴 스파에서 만난 앤디 아스텔(61) 씨는 한국전쟁에 참전해 전사한 삼촌 고 로버트 아스텔 씨를 추억했다. 그는 삼촌의 이야기를 하기 앞서 우선 로열 리밍턴 스파에 있는 삼촌의 이름이 새겨진 추모탑 ‘워 메모리얼’로 취재진을 안내했다. 이 추모탑에는 한국전쟁에 참전해 전사한 이 지역 군인의 이름뿐만 아니라 제1·2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숨진 이들의 명단 등도 함께 새겨져 있었다. “이곳에는 삼촌뿐만 아니라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전사한 나의 할아버지 중 한 분의 이름도 함께 새겨져 있다. 두 명의 아스텔이 이 추모탑에 새겨져 있다.” 

 

 

앤디 아스텔 씨가 자신의 할아버지(맨 왼쪽), 아버지(가운데), 삼촌이 참전해 받은 훈장을 소개하고 있다. 김진룡 기자

 

 

■리밍턴 스파의 오른쪽 윙어

 

 


아스텔 씨는 추모탑 인근에 있는 삼촌이 어릴 적 자주 다녔던 공원인 ‘젭슨 가든스’로 이동해 삼촌의 이야기를 이어갔다. 영국의 대표적인 휴양지 로열 리밍턴 스파는 온천으로 유명한데, 이 공원도 휴양지처럼 평화로웠다. 전쟁의 상흔보다 가족 단위로 쉬러 온 지역 주민이나 관광객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삼촌은 이 공원과 맞은 편에 있는 공원인 빅토리아 파크를 자주 거닐었다. 아마도 삼촌이 돌아왔으면 나의 손자와 함께 이곳을 거닐었을 것이다.”

공원의 잔디밭에 자리 잡은 아스텔 씨는 당시 지역의 축구팀 ‘리밍턴 스파 FC’에서 활약했던 삼촌을 설명했다. 당시 축구팀에서 활약했던 삼촌의 모습이 담긴 사진도 꺼내 들었다. “삼촌은 17, 18세에 이 팀에서 오른쪽 윙어로 활약해 많은 팬의 호감을 받았다. 시간이 오래 돼 어떤 활약을 했는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삼촌이 전사한 지 50주년이 됐을 때 이 팀이 삼촌을 추모하는 행사를 열기도 했다. 삼촌이 영국으로 돌아왔다면 유명 축구 클럽의 테스트를 받아 상위 리그에서 뛰는 것으로 돼 있어 아마 매우 성공한 축구선수가 됐을 것이다.”

삼촌은 어린 나이였지만 영국이 ‘국민 복무(National Service)’라는 이름으로 징병제를 해 복무를 위해 소집됐다. 축구선수였던 삼촌은 그렇게 한국전쟁에 참전했지만 1951년 11월 5일 19세의 나이로 전사했다. 삼촌이 전사하자 영국의 가족에게 삼촌의 부고가 전보로 전달됐다. 당시 가족은 이 소식에 큰 충격을 받았다.

“삼촌의 어머니와 남매가 삼촌의 귀환 소식을 애타게 기다렸다. 그런데 전사 소식이 알려지자 삼촌보다 두 살 동생이었던 나의 아버지를 비롯해 모든 가족이 슬퍼했다. 나의 이름에 로버트라는 이름이 가운데 들어가는데, 이는 한국전쟁에서 전사한 삼촌을 기억하기 위함이다. 나뿐만 아니라 나의 아들과 손자도 로버트라는 가운데 이름을 가지고 있다.” 이어 “삼촌이 전사한 11월 5일에 내 손자 중 한 명이 태어나기도 했는데, 우연의 일치치고는 놀라운 일이다”고 덧붙였다.

 

 

■다른 삼촌도 한국전쟁 참전 

 

그는 이어 한국전쟁에 참전해 생환한 또다른 삼촌 잭 아스텔 씨도 소개했다. 잭은 로버트가 전사했을 때 스코틀랜드에 머물고 있었고, 1952년 5월 군함을 타고 동아시아로 이동했다. 이후 한국전쟁에 참전해 임진강 인근의 한 전선에서 지상 승무원으로 복무했다.


“잭은 적군의 위치를 발견해 아군의 비행기가 포격할 수 있도록 도왔다. 1953년 7월 휴전 협정이 되자 이후 부산을 찾기도 했는데 이때 부산 남구 유엔기념공원에 안장된 로버트의 묘지를 찾아 추모하기도 했다. 잭은 당시 묘지에 흰색 나무 십자가가 있었다고 회상했다.”

잭은 1954년 12월 영국으로 돌아오기 전 말레이시아에서 15개월 정도 군복무를 이어갔다. 현재 뉴질랜드에 정착해 살고 있다. “삼촌은 다섯 남매였는데, 4명의 남자 형제 모두 징병제로 군복무를 했다. 나의 아버지도 영국 해병으로 복무했었다. 군인 가족이었기에 삼촌이 전사한 뒤 오랫동안 가슴 속에 고통을 안고 살아갔다.”

 

로열 리밍턴 스파 시내에 있는 추모탑 ‘워 메모리얼’을 설명하고 있는 앤디 아스텔 씨.

 

■한국의 평화를 바란다

 

직업군인으로 복무한 아스텔 씨는 1977년 8월 16일 세계적으로 유명한 ‘로큰롤의 제왕’ 엘비스 프레슬리가 숨진 날 입대했다. 당시 그는 16살의 어린 나이었지만 ‘주니어 솔저’로 입대할 수 있었다. 이후 세계를 돌면서 군복무를 이어갔는데 1988년 서울 올림픽을 앞두고 6주간 한국을 방문하기도 했다.


“당시 올림픽을 앞두고 통신·보안 작업을 위해 서울을 찾았다. 이때 아버지가 삼촌에게 보내는 편지를 들고 유엔기념공원의 삼촌 묘지에 방문했다. 편지와 함께 장미를 헌화했다. 편지의 자세한 내용은 모르지만 아마도 아버지가 삼촌에게 ‘사랑한다’는 내용을 전한 것 같다.” 유엔기념공원을 방문해 느낀 좋은 인상도 덧붙였다. “이곳의 묘지는 매우 평화롭게 묻힐 수 있는 곳이란 것을 알았고, 이곳에 묻힌 모든 사람에 평화가 깃들 것이라 생각했다. 한국인은 이곳에 묻힌 전사자가 한국의 자유를 위해 희생한 것을 알기 때문에 한국인에게 매우 경건하게 느껴지는 장소였다.”

그는 삼촌의 희생이 헛되지 않았음을 강조했다. 삼촌은 자유와 평화 등 대의를 위해 싸웠기 때문이다. “한국전쟁은 말 그대로 전쟁이다. 자유민주주의를 지키려는 사람과 이에 반대되는 사람이 벌인 전쟁 말이다. 삼촌이 이 자유의 가치를 지키는 것은 옳은 일이었다.”

한국의 평화도 이야기했다. “북한에 핵이 없어졌으면 좋겠고, 북한과 한국이 미사일 배치나 동맹군과 연합 훈련 등도 안해야 한다. 앞으로 한국이 평화롭길 바라고 통일도 됐으면 좋겠다.”

 

아스텔 씨의 삼촌(맨 아랫줄 맨 왼쪽)이 지역 축구팀에서 활동하며 찍은 기념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