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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6.20 국제신문/ 우연히 알게 된 시조부 사촌의 전사…4代째 한국과 인연

 

우연히 알게 된 시조부 사촌의 전사…4代째 한국과 인연

 

UN공원에 잠든 용사들…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 2 <7> 호주군 故 에드워드 밀우드


- 1951년 가평전투 참전한 토비
- 중공군 저격수 총에 맞아 숨져
- 유엔공원 찾은 계기로 알게 돼

- 조세핀 부부 90년대 단양 거주
- 아들은 韓여성 만나 결혼까지
- 손주들도 주말 한국학교 다녀

- “후손이 잊지 말아야 할 이야기
- 참전용사 알릴 홈피 만드는 중”

“우리 가족과 한국의 인연은 여러 세대에 걸쳐 이어지고 있어 특별합니다. 시할아버지의 사촌인 에드워드 밀우드는 한국전쟁에 참전했다가 전사했습니다. 1990년대 충북 단양에서 우리 남편은 영어 선생을 했고, 세 아이와 함께 2년간 머물렀죠. 막내아들은 호주에서 한국 여자와 만나 결혼했지요. 우리 손주들은 혼혈로 우리 가족과 한국의 인연을 계속 잇고 있습니다.”

조세핀 밀우드의 시할아버지 사촌인 에드워드 밀우드의 모습. 오른쪽 사진은 퍼스 시내에 위치한 킹스 파크의 추모시설 내 새겨진 한국전쟁 전몰용사의 명단, MILLWOOD. E. L.이라 적힌 밀우드의 이름도 보인다. 조세핀 밀우드 제공·김태훈 PD

호주 웨스턴오스트레일리아주 퍼스에서 만난 조세핀 밀우드(여·63)가 자신의 가족과 한국의 인연을 소개했다. 그의 시할아버지 사촌은 1950년 9월 한국전쟁에 호주군으로 참전한 에드워드 밀우드(애칭 토비)다.

“처음엔 우리 가족 중 한국전쟁 참전자가 있는지 몰랐습니다. 2015년 손주의 첫돌을 맞아 한국을 방문했다가 우연히 부산 남구 유엔기념공원을 방문했죠. 여기서 밀우드란 성이 적힌 비석을 봤고, 이어 그의 묘도 찾았습니다. 호주에서 밀우드 가문은 흔치 않아요. 바로 우리 가족 중 한 분이란 걸 직감했죠.”

밀우드 가문이 호주에 정착한 계기는 이렇다. 1855년 영국 런던에서 밀우드란 성을 가진 과부가 3명의 아들을 데리고 호주 남쪽의 태즈메이니아섬에 정착했다. 그렇게 호주에서 밀우드 가문의 역사가 시작했다. 3명의 형제 중 1명은 광산에서 일하기 위해 사우스오스트렐리아주 애들레이드로 갔고, 나머지 2명은 섬에 남았다.

“애들레이드로 갔던 분의 직계 자손이 바로 토비입니다. 섬에 남았던 두 분 중 한 명의 직계 자손이 우리 남편이죠. 유엔공원을 찾은 뒤부터 토비와 우리 가족이 어떤 관계가 있는지 조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 시할아버지의 사촌이란 걸 알게 됐죠.”


■밀우드 가문의 한국전쟁 참전

조세핀 밀우드가 인터뷰 중 환하게 웃는 모습. 김태훈 PD

토비는 1915년 웨스턴오스트레일리아주 칼굴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여느 서호주 사람과 마찬가지로 광산에서 일했다. 서호주는 지금도 광산으로 유명하다. 20대 중반이 된 토비는 1939년 발발한 제2차 세계대전에 먼저 참전했다.

당시 토비는 호주군 ‘대전차 중대’의 2파운드 포를 운용하는 포병이었다. 그는 1941년 리비아 투브루크에서 독일군 탱크 2대를 폭파하는 성과를 올렸다. 제2차 세계대전 막바지였던 1945년 태평양 전쟁에도 참전했다. 전쟁이 끝나고 호주로 돌아온 그는 다시 광산으로 향했다. “1945년 뉴기니에 있었던 토비의 기록을 찾아보니 토비는 ‘아주 단정한 모습은 아니지만, 잘 싸우고 용기가 많았다’고 서술돼 있었어요.”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이 터졌다. 호주에서는 같은 해 8월부터 6·25전쟁 지원자를 모집했다. 20~39세만 참전이 가능했는데, 군 경험도 있어야 했다. 토비는 참전하기로 결심했다. 그는 같은 해 9월 부산에 도착했다. “그가 왜 한국전쟁에 참전했는지 정확하게 모릅니다. 다만 자신이 우수한 병사인 것을 알았고, 공산주의를 격퇴하길 바라서 그랬던 것으로 추측돼요.”

한국에서 여러 전쟁터를 누빈 토비는 1951년 4월 경기도 가평에 있었다. 당시 중공군이 남하를 위해 대대적인 춘계 공세를 펼쳤다. 이곳에서 호주군 등 영연방 국가가 중공군을 막기 위해 사력을 다했다. 가평전투는 영연방 국가의 승리로 끝나가고 있었다. 토비도 동료들과 며칠 뒤 찾아올 4월 25일 안작데이(Anzac Day)를 기다리고 있었다. 안작데이는 우리의 현충일처럼 안작(호주와 뉴질랜드 군단)의 희생을 추모하는 날이다.

토비의 운명은 한 발의 총성으로 엇갈렸다. 토비 소대의 지휘관 프레디 프롬이 들판으로 가선 안 된다고 경고했다. 중공군 저격수가 대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토비는 이를 듣지 못했는지 들판으로 나갔고 중공군 저격수의 총에 맞았다. 토비의 동료들은 곧장 저격수를 사살했다. 토비는 살아있었지만, 상태가 매우 좋지 않았다. 프롬은 토비를 데리고 가기 위해 차에 태웠지만, 토비는 결국 안작데이를 하루 앞둔 4월 24일 유명을 달리했다.

“프롬은 토비에 관해 ‘가끔 화를 잘 내고 직설적이었다. 병사들이 이런 모습을 좋아했지만, 두려움을 주기도 했다. 맡은 일을 완벽하게 해냈지만, 작은 규율엔 무심하기도 했다. 그는 좋은 소대원이 되기 위한 모든 자질을 가지고 있었다’고 회고했습니다.” 그는 전사한 뒤 유엔공원에 묻혔다.


■밀우드家와 한국의 계속된 인연

조세핀 밀우드 가족이 충북 단양에서 찍은 기념사진. 조세핀 밀우드 제공

토비가 시작한 밀우드 가족과 한국의 인연은 1997년에 다시 이어졌다. 조세핀과 그의 남편 더글라스 밀우드는 한국 정부의 외국인 선생님 초청 프로그램으로 충북 단양을 찾았다. 더글라스는 한국 영어 선생을 지도하고, 직접 한국 학생을 가르치기도 했다. 2년간 밀우드 가족은 한국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당시 현대적이지 않지만 5일마다 열리는 시장도 있었고, 교회에 가기도 했어요. 특히 한국의 자연 풍경이 아름다웠어요. 사계절을 경험할 수 있었죠. 단양의 가을은 정말 아름다웠답니다.”

한국의 금융위기로 정부 지원이 중단되자 다시 호주로 돌아온 밀우드 가족. 끊어질 것 같았던 한국과의 인연은 조세핀의 막내아들 데이비드 밀우드가 다시 이었다. 데이비드는 퍼스의 한 대학에서 한국에서 유학 온 여학생과 교제를 시작했다. 결국 결혼에 골인했다.

“막내아들이 여자친구가 생겼다고 해서 장난으로 성이 뭔지 물어봤습니다. 김 이 박 씨 중 하나 아니냐고 물었죠. 그런데 명 씨라 흔한 성은 아니라 생각했습니다. 현재 호주에서 막내아들 가족은 9살 된 큰딸과 1살짜리 아들을 키우고 있어요. 큰손주는 매주 주말 한국 학교와 한국 미술학원도 다닙니다.”

더글라스도 한국과의 인연을 소중하게 생각했다. 더글라스는 “처음에 단양에 갔을 때 한국과 인연이 이렇게 길어질 것이라 저도 생각하지 못했어요. 유엔공원을 찾아갔던 것도 우연이었죠. 저희 손자들이 한국인과 호주인의 각각 좋은 모습을 물려 받아 두 나라의 문화 융합이 눈에 보이는 것 같아 기쁩니다”고 말했다.

이어 “아내가 열정을 가지고 토비를 조사하는 것도 자랑스러워요. 아내가 은퇴 전 교장 선생이었고, 과거엔 사서도 했었습니다. 이런 경험을 살려 이런저런 자료를 찾는데 아주 능합니다. 항상 토비와 관련해 새로운 걸 찾아서 신기해요”라고 덧붙였다.



■참전용사를 기억하기 위한 노력

밀우드 가족과 한국의 인연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조세핀은 토비를 알게 된 순간부터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호주 군인 중 귀국하지 못한 사람들에 관해 더 알아보기로 결심했다. 토비뿐만 아니라 한국전쟁에서 전사한 호주 군인의 이야기를 공유할 홈페이지도 만들고 있다.

“한국전쟁 정전 70주년을 맞아 정전협정일인 7월 27일까지 홈페이지를 완성하는 게 단기적인 목표입니다.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호주 군인의 이름은 지금 남아 있지만 알려진 게 없어요. 전쟁이 70년 전에 일어났고 벌써 호주 내에서는 이를 잊어가고 있어요. 우리가 이들을 기억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전쟁을 조사하고 알리기 위한 그의 노력도 계속된다. 지난 5월 ‘서호주가족역사협회’에서 토비 이야기를 포함해 한국전쟁을 주제로 발표하기도 했다. 그는 토비를 향해 “밀우드 가족들은 여전히 당신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퍼스 시내에 위치한 킹스 파크(Kings Park)를 방문할 때 추모시설에 새겨진 당신의 이름을 항상 봅니다”며 하고 싶은 말을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