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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보도

유엔기념공원과 관련한 신문, 잡지 등의 "언론 보도기사 모음" 입니다.

2023.06.21 조선일보/ [태평로] “나 죽으면 부산에 묻어주오”

 

[태평로] “나 죽으면 부산에 묻어주오”

유엔기념공원에 묻힌 2300 용사는 ‘한국 수호신’ 

자주 찾고 기억해야 할 우리의 소중한 안보자산 

 

국제박람회기구(BIE) 실사단이 지난 4월 6일 오전 부산 남구 유엔 기념공원을 찾아 유엔군 전사자 묘역을 둘러보고 있다./김동환 기자

국제박람회기구(BIE) 실사단이 지난 4월 6일 오전 부산 남구 유엔 기념공원을 찾아 유엔군 전사자 묘역을 둘러보고 있다./김동환 기자

 

캠벨 에이시아(16)양은 자칫 외국인으로 오해할 법한 이름과 외모지만 부산 용호동에서 나고 자란 한국인이다. 아빠가 캐나다인, 엄마가 한국인이라 영어와 한국어 모두 유창하다. 초면이라면 완벽한 한국어에 놀라고, 해박한 6·25전쟁 지식에 다시 놀란다. 초등학교 때부터 영국·벨기에·네덜란드 등 파병국을 찾아 참전 노병들과 교류한 사연이 매스컴을 여러 번 탔다. ‘참전 용사들의 손녀’ ‘청소년 외교관’이라는 자기소개가 과장이 아니다.

에이시아의 주 활동 무대는 대연동 유엔기념공원이다. 용호동 집에서 지척이라 어릴 때부터 단골 산책 코스였다. 매년 6·25나 정전협정 체결일(7월 27일), 영연방 현충일(11월 11일), 성탄절 등 의미 있는 날 군복 차림으로 방문객을 맞이해 동네 명물이 됐다. 지난 4월엔 부산의 ‘2030 엑스포’ 유치 역량을 가늠하기 위해 방한한 국제박람회기구(BIE) 실사단의 안내도 맡았다.

그날 실사단은 공원에 들어섰을 때만 해도 심드렁한 표정이었다. 에이시아의 안내로 분수대를 병풍처럼 둘러싼 커다란 비석들을 지날 때 일부 위원이 발걸음을 멈췄다. 전사자와 실종자 4만896명의 이름을 빼곡히 적은 추모 명비 앞이었다. 마침 위원 8명 중 4명이 6·25 참전국 출신이었다. 질문이 이어졌다. “우리 용사들 이름은 어디 있나요?” 유엔기념공원이 세계 유일의 유엔군 묘지라는 설명을 비로소 실감한 표정들이었다.

북한의 남침에 맞서 자유 진영 22국 청년 195만7733명이 이 땅에서 피를 흘렸다. 3만7902명이 목숨을 잃었다. 1951년 유엔사가 전국 각지에 가매장돼 있던 유해를 한곳에 모아 조성한 공동묘지가 유엔기념공원의 기원이다. 정전 후 미국 등 7국이 유해를 본국에 가져가면서 현재는 11국 장병 2320명이 잠들어 있다. 처음엔 유엔이 직접 관리하다가 1974년부터는 11국 주한 대사들이 관리위원회를 구성해 공동 관리하고 있다.

이런 역사를 가졌지만 오랜 기간 거의 조명받지 못했다. 1·2차 세계대전과 달리 6·25전쟁이 국제사회에서 ‘잊힌 전쟁’ 취급을 받은 것과 무관치 않다. 생존한 유엔군 장병들의 여생도 굴곡이 많았다. 상당수가 10대 후반에 전선에 투입됐다. 예민한 시기에 겪은 끔찍한 전쟁은 심각한 정신적 후유증을 남겼다. 폐허가 된 나라에 희망을 갖기도 어려웠다.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는 세월이 수십 년 흘렀다. 

 

변화의 조짐이 감지된 건 2010년 무렵이다. “죽으면 부산에 묻어달라”는 유언을 남기는 참전 용사들이 하나둘 늘어났다. 6·25 60주년을 맞아 본격화한 보훈처의 초청 사업으로 한국을 다녀간 뒤 생긴 일이다. 한국의 발전상을 보며 스스로도 확신하지 못했던 참전의 정당성을 찾고, 마지막 날 부산에 잠든 전우들과 교감하며 정서적 위로를 받은 것이다. 2015년 5월 프랑스 참전 용사 레몽 베르나르씨를 시작으로 최근까지 19명이 사후(死後) 안장됐다. 60여 년 만에 실질적인 묘지의 기능을 회복한 것이다. 공원을 공동 관리하는 11국 대사들도 바빠졌다.

 

사후 안장을 희망하는 노병들은 “죽어서도 한국을 지키겠다”는 말을 빼놓지 않는다. 70년 전 피 흘려 지킨 나라가 여전히 정전 상태이고 북한의 위협이 날로 커진다는 설명을 듣고 나면 대개 이런 반응이 나온다고 한다. 립 서비스가 아니다. 공원을 공동 관리하는 11국은 이곳을 사실상 자국 국립묘지로 간주한다. 북한 미사일이 부산에 떨어질 경우 이 나라들이 가만있겠나. 이번 주 일요일이면 6·25 발발 73년이 된다. 이보다 유엔기념공원을 찾기 적합한 날이 많지 않다. 운이 좋으면 에이시아의 안내도 받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