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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설날 찾은 재한유엔기념공원~


[2006.01.29] 설날 아침 재한유엔기념공원을 찾다~

병술년의 새해가 밝았습니다. 맑고도 따뜻하게 새해가 밝았습니다. 개(犬)의 해를 맞아 더욱 부지런하라는 의미인지 우리 가족 해마다의 일정과 사뭇 다르게 설 연휴를 보내었기로 기록해 봅니다.
본가, 큰아버지댁, 큰고모댁, 처가로 이어지는 세배와 차례의 늘상의 일정에 더하여 짬을내어 재한유엔기념공원(United Nations Memorial Cemetery in Korea)을 들르고 이튿날엔 아침에 얼른 피프광장으로 유명한 남포동 극장가를 찾아 영화도 한편 보았군요.
계획하였던 걸음도 아닌데 무슨 끌림인지 새해 첫날부터 찾은 유엔기념공원은 부산에 살면서도 아주 어릴적 단 한번의 기억속에 어렴풋할 뿐 거의 기억이 없는지라 감회가 남달랐고 아이들에게도 좋은 추억이 될 것 같습니다.
아주 어릴 적부터 보아왔던 정문은 하얗게 페인트칠 되어 깨끗하지만 오래도 되었다 싶어 사뭇 기념공원의 격에 못미치는 듯 해 보이는데, 더욱이 바로 옆에 턱하니 자리한 문화회관의 웅장함에 압도되어 초라하기까지 합니다. 그렇게 유엔기념공원을 들어섭니다.
그런데 웬걸, 나중에 집에 돌아와 유엔기념공원을 검색하다가 두 번 놀랐습니다. 한번은 그 관련 자료의 빈약함에 놀라고 또 한번은 그 초라한 행색의 정문이 가히 당대 최고 건축가의 당대 최고의 작품이라는 설명에 놀랐습니다. 이에 이르러는 건축에 있어 백치의 문외한인 자의 딱 그 수준의 생각이었구나 하였고 오직 거대하고 화려한 것에만
익숙한 속물적인 나의 본능이 지극히 부끄러웠던 것입니다.
정문을 설계한 작가, 김중업님에게 미안한 마음 전하며 작가가 저서 <건축가의 빛과 그림자>에 기록한 자부심을 옮기는 것으로 간단한 소개도 대신하고 마음의 빚도 덜어 봅니다.
 
부산 유엔기념 공원은 부산 광역시 남구 대연4동에 위치하고 있다. 곳은 세계평화와 자유 대의를 위해 생명을 바친 여러 나라의 영웅적인 전사자들이 잠들어 있다. 기념공원은14.39( 45,000)이며 유엔군사령부에 의하여 개성, 인천, 대전, 대구, 밀양, 마산 등지에 있었던 6개소의 묘지로부터 유해가 이장되기 시작했던 1951 1월에 설치되어 동년 4월에 봉납되었다.

이국 땅에서 평화를 위하여 싸우다 여러 나라의 천사들에게 모아 바친 작품이다. 한국적이라는 명제를 내세우고 조상들이 남긴 낱말만을 주어 모았자 오히려 우리의 전통을 욕보이는 일이 된다. 한국 사람들만이 간직해 얼을 어떻게 조형화하여 얼을 담을 것인가 하는 일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어서, 하나 둘의 잡이 나올 성싶지 않다. 소품은 한껏 부푼 선에 부드러움을 불어넣어, 어린 시절의 아스라한 향수를 기억하면서 잃어버린 고향을 되찾으려는 벅찬 작업의 소산이다. UN 관계 건축 가운데에서는 가장 아름다운 건축이라는 우탄트 총장의 찬사를 들은 작가로서는 기쁨인 동시에, 작가 개인에게도 소중한 작품으로 기억하고 있다. 김중업, <건축가의 빛과 그림자>...


유엔기념공원의 전경. 파란 하늘과 하얀 뭉게구름을 이고 고즈넉합니다.

정문을 들어서자 어릴 적 기억에는 없는 소위의 화려한 또 한번의 문인지 조형물인지가
우리를 맞습니다. 대리석으로 치장한 문은 기념공원의 이모저모를 기록하여 찾는 이들의
안내를 대신합니다.

공원내 참전국별 묘역 배치도입니다. 가만히 보니 전몰 용사가 가장 많은 미국보다 영국과 터키의 묘역이 더 넓습니다. 유해 송환의 애로 때문이었을까요?

참전국별 2300명 전몰 용사의 기록입니다. 한국동란에서의 전몰 용사는 23만여명의 우리나라외에는 미국의 전사자가 2만여명으로 가장 많으나 실제 이곳에 안장되기로는 영국과 터키의 순입니다.

정성스레 단정된 묘역입니다.

바로 옆에 위치한 부산문화회관의 웅장한 전경입니다. 잠시는 신성한 묘역옆 산자들의 화려한
문화 공간이 사치스러운 느낌이었으나 가만히 생각해보니 이도 좋은 일인가 합니다.
전몰 용사들의 곁에 언제나 음악이 흐르고 문화의 향기가 가득하다면 때로 위로도 되겠다 싶거든요.


나무며 길이며가 잘 단장되어 그들에게 안식처가 됩니다. 그냥 그리만 여깁니다.

묘역의 중앙 부분에 위치한 고급스런 표식입니다. 우리식의 상석인 듯 보입니다.

전몰 용사 저마다의 비석입니다. 한 캐나다인 용사의 비엔 언제 놓았는지 알 수 없는 조화가 놓였습니다.

가장 많은 전몰 용사의 묘가 안치된 영국 묘역의 표식입니다. 별스럽지만 최근 발행된 신규
5천원권의 문법적 의문에 답이 되는가요? 국가 이름이지만(또는 수식이 되어도) 정관사 'The'가
생략되었습니다.

캐나다 묘역엔 기념동상이 섯습니다. 2001년에 캐나다의 한국참전기념사업회가 건립하였다 하는군요.


웬지 친근감이 느껴지는 나라, 2002 월드컵에서 4강의 위업을 함께 이루며 다시 한번 피를 나눈
형제의 나라임을 확인한 터키의 묘역 표식입니다.

그런가하면 나라도 이름도 알 수 없는 무명용사의 묘도 몇기 모셔졌습니다.

무명용사 묘역에 안장된 김윤언 용사의 묘비입니다. 아마도 당시 피붙이 없었던지 함께 안장
되었네요. 말리는 데도 네살박이 유정이 포즈 취하며 사진 찍어달라 합니다. 그렇기도 합니다.

이제
전장의 상흔도 어언 50여년이고 보면 찬 땅에 누워 그마저도 외로운 설날에 철없이 사진
포즈 취하는 아이라 할지라도
고사리손 한복 입은 아이의 웃음소리에 잠시나마 사람의 체온
느낀다면, 육군 일등병 김윤언 할아버지 외롭지 않다면 그로써
무례에 용서를 구해봅니다

묘역내 동백나무가 몇그루 파란데 붉게 망울을 피운 꽃이 곱습니다.

유엔군위령탑입니다. 뒤로는 참전국별 참전상황을 기록한 동판이 붙었지요.

한바퀴 돌며 동판을 유심히 봅니다. 아무리 반세기가 지난 세월의 무게라지만 마음이 많이도
무겁습니다. 필리핀의 젊은이 112명이 천리먼길 이국땅에서 전사하였습니다. 이 기록이 웬지
간혹 마주하는 필리핀 노동자들에 닿습니다.

작년 쓰나미 휩쓸고간 태국도 132명의 젊은 영혼을 이곳에 남겼습니다.

형제의 나라 터키의 전사자는 700명을 넘는군요.

정말 천리먼길 남아공에서도 참전하였습니다. 멀지만 가까운 나라로 기억해야겠어요.

중미의 축구 잘하는, 그러나 별로 기억에 없는 나라 콜롬비아도 214명의 숭고한 주검을 대한민국에 남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