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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유엔 기념묘지 ― 열 아홉 소년병사의 안식처(수 필)


작품명 : 유엔 기념묘지 ― 열 아홉 소년병사의 안식처(수 필)

작가명 :
홍계신


'유엔 기념묘지'― 유엔총회에서 정한 세계 유 일의 기념묘지가 있는 나라 대한민국, 그리고 항구도시 부산.
한국전쟁을 일컬을 때 유엔을 빼놓고는 말이 되지 않는 다고 한다. 이 전쟁은 우리 나라 단독으로 치른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미국이 치른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16개 국, 아니 21개 나라(전투지원 16개국-의료지원 5개국)가 연합해서 공산군을 물리친 전쟁이다. 인류사상 이런 전쟁은 없었다고 한다. 아니, 앞으로도 없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한국전쟁은 여러 가지 기록을 남긴 전쟁으로도 꼽힌다. 그 기록 중 하나가 바로 부산시 남구 대연동에 자리잡은 유엔 기념묘지이다.
묘역(43,615평)에는 11개 나라 2,300명 용사들의 묘소가 봉안돼 있다. 이 묘지는 유엔군 사령부에 의해 개성과 인천, 대전, 대구, 밀양, 마산 등 6개 지역에 있던 유해를 51년 1월부터 이장, 같은 해 4월에 봉납했다. 초창기에는 미국, 벨기에, 프랑스 등에서 참전했다 전사한 용사 11,000위가 있었으나 대부분 본국으로 송환되고, 현재는 호주 캐나다 네덜란드 등 11개국 용사들의 묘소만이 남아있다.
묘지에는 사방 연속으로 무덤이 놓여있고, 새빨간 장미꽃이 그날의 참상을 말해주는 듯 섬뜩하기까지 하다. 모국의 흙이 담긴 항아리를 무덤 옆에 두고 넋을 기린다. 훈장과 비문이 슬픔을 더한다.
죽은 자는 말이 없어선 가 묘지는 한없는 적막에 쌓여있다. 수천의 주검이 누운 묘역은 공원이 되어 나들이 나온 가족들이 여기저기 거닐고 있다. 철없는 아이들은 잔디밭을 가로지른다.
전쟁의 기록은 상처가 대부분이다. 그 가운데 죽어간 이들의 묘지는 가장 큰 상처 그 자체일수 밖에 없다. 유엔묘지는 바로 상처의 현장이다.
병사가 전장에서 싸우다 죽는 것은 영광이라고 한다. 더구나 세계평화와 자유를 수호하기 위해 이역 만리 낮선 땅에서 생명을 바쳐 싸우다 간 용사들의 안식처는 그래서 영광의 현장임에랴!

'유엔 기념묘지'는 1955년 12월 15일 유엔총회 때 한국전쟁에서 희생된 전몰용사들을 추모하기 위한 묘지를 설립해서 유지하기로 결의함에 정지작업에 들어갔다. 4년 후인 1959년 11월 6일, 유엔과 한국간에 정식협정이 체결되고 이듬해 3월말부터 이 묘지의 관리를 유엔이 맡게되었다. 이 협정에서 우리 나라는 평화와 자유의 대의를 위해 생명을 바친 용사들에 대한 공물로서 이 묘지가 자리잡고 있는 토지를 유엔에 무상으로 기증하기로 한 것이다.

나라별로 구역이 나뉘어진 무덤마다 고인의 기록을 적은 묘비가 놓여 있다.
'프랑스 19세 장 폴 루네이-'
한국전쟁에 참전했다가 전사한 열 아홉 소년 병사의 묘비에는 국적과 나이,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연분홍 장미 꽃봉오리가 묘비위로 얼굴을 디밀었다. 꿈 많은 열 아홉 나이에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나라를 향해 먼길을 달려왔을 그. 함상에서 전투훈련을 받고 여린 손에 총검을 쥐고 '자유와 평화'라는 거대한 기치를 들고 싸우다 간 그에게 있어 4월은 참으로 잔인한 달이다.
50여 년 전 그는, 맞서 싸우던 공산군에 의해 낯설고 물 설은 이국의 전선에서 눈을 감았다.
수많은 어린 '루네이'가 쓰러진 이 땅의 오늘.
남북의 두 정상은 영원한 적은 없다는 듯, 통일을 향한 포옹을 마지않는다.

그가 살아있다면 70을 바라보는 은발의 신사가 되어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이렇게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이름으로 남아 우리를 지켜보고 있는 것이다. 세계평화와 자유의 수호신이 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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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한국문학도서관(www.kl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