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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문화일보[2007.06.25]"지금이라도 한국이 부른다면 달려가겠다."

  • 작성자관리자
  • 작성일2007-07-24 11:41:57
  • 조회4046


“지금이라도 한국이 부른다면 달려가겠다”
에티오피아 참전용사촌을 가다
박상문기자
moonpark@munhwa.com


◈태극기를 매고,,,한국전 참전용사인 베라예 베켈레(78)가 아디스아바바의 한국전참전기념회관으로 태극기를 옮기고 있다


아디스아바바의 외곽 코리안빌리지 입구의 ‘한국마을’ 입간판


한국전 참전용사인 케베데 하일러(86)가 외롭게 병상에서 투병생활을 하고 있다.


한국복지재단의 최불암(오른쪽) 후원회장과 김석산(가운데) 회장이 지난 18일 에티오피아의 한국전 참전용사들을 격려하고 있다.


한국국제협력단이 지어준 한 의류 공장에서 참전용사 자녀들이 자신들이 만든 제품을 들어보이며 활짝 웃고 있다

☞에티오피아는 아프리카 국가 중 유일하게 유엔군의 일원으로 6·25전쟁에 참전했다. 에티오피아군은 화천, 금화, 양구, 철원 등 강원도의 최전방지역에서 공산침략군과 싸웠다. 한국전 참전 16개국 중 유일하게 포로가 없을 정도로 에티오피아군은 가장 용맹스러운 군대였다고 한다.

전쟁이 끝난 뒤 귀국한 참전용사들은 셀라시에 황제로부터 아디스아바바의 북쪽 웨레다 지역에 정착할 땅을 하사받고 이곳에서 그런대로 대우를 받으며 살았다.

그러나 1974년 멩기스투의 사회주의 정권이 들어서면서 이들 참전용사들은 예기치 못했던 시련에 부딪혔다. 북한을 상대로 전투를 했다는 이유로 직장에서 쫓겨나고 연금도 끊겼다. 심지어 살아남기 위해 정든 마을을 떠나기도 했다. 정부에서 악마취급을 하는 바람에 가장 치욕스럽게 살았다고 참전용사인 케베데 하일레(86)는 당시를 회고했다.

현재 한국전 참전용사 중 생존자는 2000여명인데 이들 참전용사들은 한 달에 나오는 연금 120비르(한화 약 1만3000원)로 매우 어렵게 생활하고 있다.

한국인과 에티오피아 정부에서 조차 기억에서 사라져 가던 이들에게 기쁜 소식들이 전해졌다. 지난해 춘천시는 국가보훈처의 후원으로 에티오피아의 수도 아디스아바바 아픈쵸베르 공원에 참전용사회관과 기념탑을 건립했다. 이는 6·25전쟁 당시 전사하거나 부상한 에티오피아 참전용사들을 기리고 그들에게 보은의 쉼터를 마련해주기 위함에서였다.

또한 한국국제협력단(KOICA)의 도움으로 ‘히브레트 피르’초등학교 건물이 세워지면서 마을에는 활기가 돌고 있다. 새 건물에는 한국에서 지원한 컴퓨터와 과학실습 기자재 등을 갖추고 있어 명문 학교로 이름이 나 주변에서 많은 학생들이 찾고 있다고 한다. 이밖에도 한국복지재단(후원문의전화 1588-1940) 등 NGO단체들이 참전용사 및 후손들을 위한 각종 지원사업을 계획하고 있어 이들과의 유대를 한층 강화하고 있다.

한국인들의 관심과 사랑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는 테파라 미타우(87)는 “전쟁 당시 막사에서 보살폈던 한국인 어린아이가 지금도 눈앞에 선하다”며 “지금이라도 한국에서 나를 필요로 한다면 당장 달려가 싸우겠다”고 노병의 변함없는 한국사랑에 대해 힘주어 말했다.


아디스아바바=글·사진 박상문기자
moonpark@munhwa.com
기사 게재 일자 2007-06-25